페르시아만 위기와 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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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페르시아만 위기가 더욱 고조됨으로써 세계 경제 질서를 다시 위협하고 이란-이라크전의 확전 가능성을 한층 증대시키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5월 들어 6건의 유조선 피격사건이 일어났고 그중 5건이 지난 1주일 사이에 발생했다.
1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21만t급 유조선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불타자 국제석유 현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미국은 이 지역의 석유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중엄호 등 필요조처를 강구할 것을 제의했다.
하루 50여 척의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자유세계에 원유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유세계 수요량의 19%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총 수입량의 62.7%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69%)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높은 수준이다.
긴급사태가 발생하여 세계 원유량이 7%이하로 감소될 경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긴급융통제도를 활용하게 되어있고 그렇게되면 7백16일분의 원유공급이 보장될 수는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만이 폐쇄될 경우 현재의 이란-이라크전의 지구전적 양상으로 보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의 석유비축량이 넉넉지 못한 데다 우리나라 원유수입선이 페르시아만 연안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우리 경제에 대한 타격은 더욱 크다. 페르시아만에의 석유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미국은 90일분, 일본이 1백20일분, 서독이 1백80일분을 비축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64일분 밖에 안된다.
정부당국의 계산에 따르면 페르시아만이 봉쇄될 경우 현재의 비축량과 타지역으로부터의 수입석유로 1백2일간은 버틸 수 있다고 하나 그것은 하나의 낙관일 뿐 변수는 많다.
중동사태가 악화되어 원유공급 질서가 위협되면 이란-이라크전의 확대는 불가피할 지 모른다.
지금 중동지역 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친서방 온건국가들은 이라크를 지원하고 있고 그 배후에는 미국·영국·프랑스가 있으며 친소 과격파 국가들은 이란 편에 서있다.
따라서 이 지역 국가 이익을 대표하는 유조선에 대한 위협과 공격이 계속되면 양국 간의 전쟁이 지역전으로 확대되고 다시 강대국들이 개입되는 사태를 몰고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미국이 페르시아만의 석유수송로 안전을 위해 군사력으로 개입한다면 월남전을 확대시킨 통킨만 사건의 중동판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은 43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이란-이라크전의 종결이다.
특히 북한은 이란에 무기를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것으로 소련제 최신식 무기구입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다.
정부는 에너지 수입선을 다변화하여 안정공급 기반을 구축해야 하고 강대국과 중동지역 관계국가들은 장기소모전 단계에 들어가 있는 이란-이라크전을 방관하는 현재의 태도를 지양하여 화해를 주선해야 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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