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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교문위의 '본헤드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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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

“학자금 대출 받은 게 잘못도 아닌데, 회사 회계팀에서 ‘대출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괜히 눈치 보이고, 개인적인 일이 회사에 알려지는 게 싫어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학자금 대출’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하소연이다. 지난 2010년부터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학자금을 대출 받으면 취업 후 갚아나가는 제도다. 이 제도에 따르면 빚을 갚을 의무는 고용주에게 있다. 매달 월급에서 대출상환금을 공제한 뒤 국세청에 ‘채무 상환 신고’를 하고 ‘상환 명세서’를 작성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실수로 돈을 갚지 않거나 신고를 안 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선 사원들의 대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연봉 2068만원을 받는 신입사원이 내야 하는 월 의무 상환 납부액은 3만원 정도다. 직원 스스로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금액인데도 회사가 대출 사실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셈이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자금 대출 때문에 회사에서 빚쟁이 취급을 당한다’ ‘중소기업은 학자금 대출자 채용을 기피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1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국세청이 원천징수 통보를 하기 전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이 취업 후 ‘자진 납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을 논의하려 했다.

 그러나 법안은 논의되지 못했다. 여야가 기 싸움을 벌이다 법안소위 자체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학교 옆에 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관광진흥법’이 발목을 잡았다.

 익명을 원한 야당 교문위원은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선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며 “하지만 여당은 야당이 ‘관광진흥법’을 통과시켜줘야 법안소위를 열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선 5월 6일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 시한 내에 다시 법안소위가 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직접 혜택을 볼 채무자가 8만 명, 잠재적 법 적용 대상자가 9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성을 공감하는 법안을 왜 묵혀 둬야 할까. 국회 교문위가 기 싸움을 벌이다 ‘본헤드 플레이(미숙한 경기 운영)’를 또 한 번 반복하는 게 아닐까.

 지금도 국세청 상담센터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대부분 “어렵게 키운 것도 미안하고, 취직하느라 애쓰는 걸 보는 것도 불쌍한데,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서 싫은 소리 듣고 눈치나 보게 만드니 자식 볼 면목이 없다”는 내용이다. 월 3만원을 갚는 문제로 부모들에게 ‘죄진 마음’이 들게 해선 안된다. 4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되길 기대한다.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