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이지 않는 손' 거둔 중국 … '좀비 기업' 정리 칼 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중국의 대표적인 국유기업인 시노펙(중국석화)과 페트로차이나(중국석유)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포춘이 선정한 2014년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서 월마트와 로열더치쉘에 이어 3, 4위를 차지했다.

이런 순위만 보면 중국 국유기업은 세계 거대기업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15만5000개(2013년 기준)에 달하는 중국의 모든 국유기업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많은 국유기업은 경영 비효율성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데도 이런 국유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우려해 그동안 국유기업의 파산을 막아왔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던 셈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키다리 아저씨’를 차저했던 중국 정부가 태도를 바꾸고 있어서다. 상징적인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중국 중앙국채등기결산공사는 21일 허베이(河北)성에 본사를 둔 국유 전력설비 제조업체 바오딩톈웨이(保定天威)가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고 밝혔다. 국유기업 첫 디폴트다. 바오딩톈웨이는 2011년 발행한 15억 위안의 채권 이자 8550만 위안(약149억원)을 상환 만기일(20일)까지 갚지 못했다. 이 채권은 5년 만기에 5.7% 금리로 발행됐다.

 바오딩톈웨이는 1995년 전기변압기 생산 업체로 출발해 성장했다. 2008년에 중국병기장비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중국병기장비그룹은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가 관리하는 113개 대형 국유기업(중양치예·中央企業) 중 하나다. 2010년 매출액은 100억 위안이 넘었다. 문제는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들면서 발생했다. 중국 내 태양광 사업 경쟁이 치열해지며 과도한 설비 투자가 짐이 됐다. 2011년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내며 지난해에는 101억 위안의 적자를 기록했다.

 바오딩톈웨이의 디폴트는 새로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의 존폐를 시장 원칙에 맡기는 쪽으로 방향을 튼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미 조짐은 있었다. 리커창(李克强·사진) 중국 총리가 지난달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시장 원칙에 따라 부실 기업을 처리해 기업의 도덕적 불감증을 막고 위험 관리 의식도 높여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중국이 ‘좀비 국유기업’의 정리에 나선 배경에는 수출에서 내수로 성장 동력을 바꾸려는 정부의 목표가 깔려 있다. 그동안 중국 산업계는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이 잘나가고 민간기업이 후퇴한다) 중심이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정권 들어서면서 민진국퇴(民進國退)로 방향을 틀며 국유기업에 대한 과도한 안전망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용평가사 피치의 애널리스트 왕잉은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온 국유기업을 방치하면 민간기업과 국유기업 사이에 자원의 효과적 배분과 운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국유기업의 금융위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원칙이 정착되면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화촹(華創)증권 채권 애널리스트인 추칭(屈慶)은 “바오딩톈웨이의 디폴트는 시장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계획된 파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다만 전략적 필요성에 따라 기업의 존폐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철강제조업체인 얼중그룹더양중공업의 경우 지난달 25일 기준으로 72억6000만 위안의 빚을 갚지 못했지만 디폴트를 맞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옥석을 가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이거나, 전략 산업체는 목숨을 유지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