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방의 드리-레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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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당 총서기 호요방이 1주일간의 북한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겉으로는 화려한 친선행사가 펼쳐졌고 서로들 양측의 전통적 지의률 강조하면서 회담성과에 만족하다는 뜻을 표명했지만 그 내막의 실상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북방 3각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북한·소련·중공이 요즘 각자 심각한 딜레머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드리-레머」(3개의 딜레머)다.
북한은 안으로는 김정일 권력승계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권력층의 분열과 경제적 난관에 부닥쳐 있고 밖으로는 경제적인 개방정책과 정치적인 대서방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중공과의 미묘한 관계에 직면해 있다.
중공은 근대화의 필요에 따라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지만 소련과 북한으로부터 강력한 반발과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소련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대미관계가 악화돼 있는데다 중공이 미국·일본·서구 등 자본주의 진영과 접근,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위협하면서 사회주의 세계 안에 새로운 노선분쟁을 야기시키고 있어 사회주의 진영의 지도국인 소련으로선 중대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중공은 미국과의 밀착을 회피하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고, 북한은 중공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데 따르는 손실을 대소 접근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며, 소련은 적대관계에 있던 중공의 접근시도를 받아 들여 미·중공 밀착을 억제하고 중공편에 붙어있던 북한을 다시 자기편에 접근시키려 하고 있다.
중소 국경회담 재개와 김일성의 소련방문은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북한과 중공의 밀착으로 특징 지어져 있던 북방 3각 관계가 다시 등거리관계로 환원되면서 소련도 중공에 이어 김정일 권력승계를 승인하고 북한에 경제·군사적 원조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엔 여전히 고민이 남는다. 줄기차게 발전해 나가는 한국과의 경쟁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중공의 대한·대서방 관계가 계속 발전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요방의 북한방문도 그럼 김일성의 고민을 덜어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중공은 이젠 개방정책과 대서방 접근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이를 거부하는 북한을 저버릴 수도 없는 궁지에 빠져있다.
북한은 현재의 폐쇄적이고 군사·정치중심의 교조주의 노선이 실패했음을 실감하면서도 쉽게 중공류의 개방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내부태세가 돼있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중공을 버리고 소련에 밀착할 수만도 없다는데 김일성의 더 큰 고민이 있다.
지금의 동아시아 대세는 중공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이기 때문에 이것이 계속 거부하고 거기에서 이탈한다면 북한은 계속 고립과 낙후와 경쟁에서의 패배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호요방을 맞아 1주일간 지방을 돌면서 3차례나 회담을 가졌지만 새로운 타결점은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런 내적 갈등 속에서 성과없이 회의가 끝났기 때문에 양측은 거창한 친선행사를 벌이고 전통적 우의의 강조와 중공의 북한정책 지지만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평양은 하루빨리 군사노선을 버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을 통해서만 생존과 발전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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