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의 영적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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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한·바오로」2세 교황의 닷새동안의 우리 나라 방문은 이 사회에 영적 회오리를 몰고 왔다.
그 영적 회오리는 좁게는 가톨릭 교회 안을 드리우고 크게는 우리 국민의 정신생활에 휘몰아쳐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밀어닥친 교황 선풍이 종교관이나 인생관의 차이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도덕적 생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 교회 적인 축제 행사들이 성대하고 거룩할 뿐만 아니라 교황의 목소리가 이 땅의 현안들을 새삼 되새겨보게 했다.
경제적 발전추구노력 가운데서 소홀히 여겨졌던 정신적 평정이라든가, 현세적 성취에 초점을 두었을 때 흔히 도외시되곤 했던 도덕적정당성의 존부 문제가 되새겨졌다.
「요한·바오로」2세 교황의 방문 일정이 「화해」와「나눔」과「증거」로 의미 있게 짜여졌던 점도 상기된다. 그가 「화해」를 이야기했을 때 우리는 가장 절실한 민족의 숙원 앞에 서게 됐다.
하나는 통일로 해소해야할 분단의 현실이요, 다른 하나는 정의·민주·복지사회의 구현으로 해소해야할 광주의 불행한 과거다.
전대통령과의 공동발표문에서 교황은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남북한 양자가 조속히 대화를 재개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해야한다』고 했으며 남북한의 이산가족이 하루속히 재결합해야할 절박한 필연성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광주에서 마음과 영혼에 아픔을 주는 남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촉구했다.
교황은 「정의와 평화의 사도」 이지만 정의와 평화는 현실에서 「나눔」의 정당성에서 찾아간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은 인간 존엄을 찾고 부지런하게 양심적인 일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한다』 고 기대했으며 『부의 의로운 분배는 정당한 임금을 통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때 노동자이기도 했던 그는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소신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교황은 평화론자요, 원리적인 복음주의자인만큼 평화와 의의 실현에서도 다만 『평화롭고 떳떳한 방법으로 인간존엄을 찾고 인권을 촉구하라』고 당부한다.
그의 입장은 사제 숙품식에서 『종교적 소명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활동을 상가라』 고 했던 데도 나타난다.
그것은 교회와 국가관계에 관한 해묵은 해석을 상기시킨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카이저」의 것은 「카이저」에게』 란 성서의 귀절도 상기시킨다.
한·바티칸정상 공동발표문의 마지막 센텐스가『교황은 한국천주교회가 그 종교적 성격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국가와 교회의 각자의 별도 권능을 존중하면서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한국민의 의지에 협조하고 기여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고 끝맺고 있는 것도 음미할 만 하다.
그것은 학생시위를 보고 최루탄에 눈물을 쏟아야했던 교황의 고심 끝의 선택처럼 보인다.
그는 올바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악에 악, 불의에 불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결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의와 진리는 오로지 사랑과 화해만으로 성취할 수 있고, 고통을 나눔에 의해서만 참된 행복이 있다는 그의 설득이 인상적이다.
한편으로 교황은 한국에서 큰 감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교황이 『한국인은 탄력과 생기와 낙관과 창의성과 기백과 인정으로 가득 찬 겨레』 라고 찬양했을 때 그것은 결코 입에 발린 칭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때문에 그가 화해로써 우리 한국인들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기를 당부할 때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가 이 땅에 던진 영적 교화의 파문이 오래고 가치 있는 것이 되도록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가 정신을 새롭게 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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