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전 출국금지, 미국에선 엄청난 일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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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존 브라운리 변호사. 그는 미국 10대 로펌 중 하나인 홀런드 앤드 나이트 워싱턴 DC 사무소에서 화이트칼라 범죄 담당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체 대표가 미국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고 납품 계약을 따내려 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됐다. 미국 거주자가 아니고 직접 뇌물을 건넨 것도 아니지만 미국 법원에 출두하지 않을 경우 국제수배자 명단에 오를 수 있다.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때문이다.

 미국 대형로펌 ‘홀런드 앤드 나이트’에서 화이트칼라 범죄를 담당하고 있는 존 브라운리(50) 변호사는 20일 기자와 만나 “최근 한국에서 기업들을 중심으로 FCPA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 방문이 잦아진 이유다.

 브라운리 변호사는 “FCPA는 당초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1977년에 도입됐으나 최근엔 ‘미국과 연결고리가 있는 모든 기업’으로 대상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도 2010년 유사한 법(UK Bribery Act)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국제적 추세가 각 나라의 부패를 줄이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일상적 부패를 자발적으로 없애는 압력 요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브라운리 변호사는 한국 방문 중 접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1~2008년 버지니아주에서 연방 검사장을 지내며 숱한 공직자 부패사건을 수사했다. 지난해는 미국 정가에 파문을 일으킨 로버트 맥더널 전 버지니아 주지사의 금품 수수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브라운리 변호사는 “오늘 영자지에서 ‘성완종 리스트’ 관계자들을 출국금지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기소 전 출국금지는 미국에선 엄청난 일”이라며 “주로 압수수색을 통해 기록을 확보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검찰은 (미국에 비해) 공격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선 기업 수사의 70%는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서피나·Subpoena)에 의존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대신 문서제출 명령 위반은 중범죄로 최고 징역 20년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거짓 기록을 제출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만약 미국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했다면 무엇을 했을까. 그는 “은행 거래내역과 e메일 기록 등을 살펴 인물들 간의 관계를 정의하고 증인을 확보하는 것은 같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름을 적은 메모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판사와 배심원 12명을 합리적 의심 없이 설득할만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확실한 증거와 진술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글·사진=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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