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 "성완종 잘 알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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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16일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과 함께 미 국방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예멘 사태를 논의했다. [사진 유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간) 공개 석상에서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고 긴장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은퇴 후 희망까지 거론하며 향후 정치 참여에 대해 거리를 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신이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이유에 대해 “내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드러난 직후다. 성완종 사태 이후 반 총장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 총장은 이날 저녁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만찬을 겸한 초청 강연 말미에 “내가 007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영화배우인 대니얼 크레이그를 유엔의 ‘지뢰제거 특사’로 임명했는데 나는 여덟 번째 유엔 사무총장”이라며 “내 일에서 물러나면 나는 008이 된다”고 말했다. 청중이 폭소를 터뜨리자 반 총장은 준비했던 원고 용지를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 넣으면서 향후 희망을 얘기했다. 이날 만찬장에는 USA투데이와 블룸버그·교도통신 등 각국 언론이 자리했다. 반 총장은 “집사람과 45년간 결혼 생활을 해왔는데 집사람이 정말로 잘 참고 잘 도와주며 내 비전을 이해해줬다”며 “물러나면 멋진 레스토랑에 집사람과 같이 가고 싶다. 더 중요한 것은 손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은 이어 “자식들에겐 때론 엄격해야 하는 게 (부모로서의) 책임이지만 손주들의 응석은 받아주게 된다”며 “엄격하게 대하려 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 청중이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반 총장은 “정말 긴장에서 해방돼(tension-free) 완전히 자유롭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감사하다”며 연설을 마쳤다.

 그동안 반 총장은 정치 참여에 계속 선을 그어 왔다. 지난해 11월에도 반 총장이 차기 대선에서 유망주라는 ‘반기문 대망론’이 불거지자 언론에 공식 자료를 배포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날 오전 반 총장은 연합뉴스 기자를 만나서도 경남기업 수사로 재등장한 대망론과 보복 수사 논란 등과 관련해 “이번 사안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성 전 회장은) 충청포럼 등 공식 석상에서 본 적이 있고 알고 있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또 “국내 정치에 관심도 없고 바빠서 그럴 여력도 없다”며 “이런 게 또 나와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반기문-성완종 인연은=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은 2000년 11월 충청포럼 창립 당시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2006년 10월 8일 유엔 사무총장 당선인 신분일 때 충청포럼 주최로 서울 롯데호텔에서 환송연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성 전 회장은 “반 총장이 차기 충청포럼 회장인데 유엔으로 가시게 돼 우리에겐 큰 손실이 됐다”고 아쉬워했고 반 총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고 한다. 또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씨는 2012년 3월 17일 당시 자유선진당 후보로 총선(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했던 성 전 회장의 선거사무소에 가서 지지연설을 하기도 했다. 반씨는 “형님(반 총장)께서 제게 특별히 전화해서 이곳을 찾았다. 성완종 후보와 저희는 가족, 친구 같은 관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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