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2)-제80화 한일회담(191)-상반된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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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군사정부는 한일문제에 대해 다소 성급하달 정도로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다. 젊은 군인들답게 한일문제를 단숨에 처리하려 들었다.
혁명 엿새만인 22일에 있은 김홍일외무장관의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군사정부는 대일문제에 대해『한일회담이 되도록 빨리 속개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아직 한국의 군사정부를 어떻게 대할지 기본방침조차 세위놓지 않았을 때였다.
김장관의 회견은 일본정부 당국자들에게 「한국의 군사정부가 일본을 적대시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주었지만 그들의 대한태도는 한동안 계속 「유보적」이었다.
일본기자들이 외무성 당국자나 자민당간부들을 상대로 대한정책에 대해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관망하고 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외교용어로서의「관망」은 현재 상황이 마땅치 않을때 반대나 거부의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되는것이 상례다.
그러나 군사정부의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적극적이고도 열성적인 태도는 그후로도 계속 기회있을 때마다 표명되었다.
5월22일 김장관의 첫 기자회견이 있은지 닷새만인 27일에도 김장관은 다시한번 한일회담의 조속한 속개를 촉구했고 6월 들어서는 미일에 군사혁명을 이해시키기 위한 민간사절을파견키로 했다.
일본정부의 대한태도가 긍정적·우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것은 「케네디」미국대통령과「이께다」(지전용인) 일본수상의 워싱턴회담 이후부터다.
「케네디」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방미한 「이께다」수상은 「케네디」와 만나기전에 가진 미국 TV와의 회견에서도 여전히 한국문제에 대해 『정관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이 『정관하고 있다』는 외교용어는 현5공화국 정부가 들어선지 1년 남짓한 지난 82년이·장사건이 터졌을 당시 일본 외무대신이 쓴 바로 그 표현이다.
「이께다」수상은 그러나 「케네디」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7월1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한일국교 정상화회담을 재개할것』이라고 말해 지금까지의 「관망자세」를 비로소 거둬들였다.
이어 7월5일에는 일본을 방문한 최덕신특사가 「이께다」수상을 예방한데 이어 일본각료들및 자민당간부들을 연쇄 접촉함으로써 한일정부간의 공식대화 개시를 위한 돌파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군사정부의 대일 적극태도는 혁명을 주도한 박정희최고회의의장의 판단이 주로 작용한듯하다. 이에 관해서는 박의장의 처남이자 후에 공화당 5선의원을 지낸 육인수씨의 증언을 들어보자.『육사생도들의 5·16 지지데모가 있은 다음날쯤으로 기억돼요. 모처럼 신당동 집에들른 박장군을 만나서 이얘기 저얘기 끝에 한일문제가 화제에 올랐지요. 박장군은 심각한표정으로「우리가 경제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일으켜야한다. 그것도 중소기업으로는안되고 중공업을 해야하는데, 자금이 어디있어야지. 지금 한일회담을 빨리해서 청구권문제가 타결되면 외자문제는 걱정 안해도된다. 어떤일이 있어도 한일회담을 빨리 재개시켜야하겠다」고 합디다. 나는 혁명이 채 성공했는지 어떤지도 아직 염려스런판에 이 양반이 벌써 이런 생각까지하고 있나 하고 속으로 좀 놀랐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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