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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태의 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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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선 '베트남 비유'부터 틀렸다. 당시 북베트남군의 주요 목표는 외국 침략자인 미군이었다. 그런데 이라크에선 테러의 희생자가 주로 이라크인들이다. 이것은 결코 '국민해방전쟁'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 명예교수 제임스 Q 윌슨이 적절하게 지적했듯 이건 '미쳐 버린 테러리즘'과 다름없다. "사담 후세인보다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2700만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한 폭도 1만여 명의 폭력이다. 이라크 국민은 1월 저격과 자살폭탄테러의 위협을 무릅쓰고 투표소를 찾았다. 10월 국민투표에는 1000만 명이 참가했다. 15일 치러질 총선에는 더 많은 유권자가 투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또 다른 '투표'가 있었다. 응답자의 3분의 2가 "요즘이 후세인 통치 시절보다 낫다"고 응답한 것이다. 5분의 4 이상이 "1년 뒤에는 훨씬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피력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지고 있지는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결코 승리하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라크 국민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했다. 테러리스트들은 가장 중요한 싸움, 즉 '가슴과 마음을 얻는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와 베트남의 또 다른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베트남에서는 폭도들의 집단이었던 베트콩이 창끝, 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진짜 전투는 북베트남이 수행했다. 당시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았다. 반면 알카에다는 혼자다. 시리아나 이란으로부터 다소 도움은 받지만 미국의 보복 가능성을 무시한 채 지원을 감행할 만큼 정신나간 국가들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잔은 최소한 반은 찼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발을 뺀다면 그 잔은 급속하게 비어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짜 내전이 발발할 것이다.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수니파를 상대로 보복전을 벌일 것이며, 이라크는 셋으로 쪼개질 것이다. 미국의 철수는 이란의 즉각적인 개입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진짜 전쟁은 미국 안으로 옮겨진 셈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속한 철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집권 공화당에서도 이런 얘기가 들린다.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의 러닝메이트였던 리버먼 상원의원은 "이라크군이 이라크의 안전을 보장할 능력을 갖추기 전에 미군이 철수한다면 이라크와 중동에서 미국이 이룬 거의 모든 진전이 한꺼번에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라크 내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 내에서 이기거나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승패는 미국 안에서의 싸움에 달려 있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의무'를 강조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덕적인 리더십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빠져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나약해 보인다. 미군이 지금 최전선에 서 있다. 이라크 국민과 중동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가치가 있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의 발행인 겸 편집인

정리=진세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