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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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일본 잡지들이 흥미를 갖고 있는 공통의 테마가 하나 있다. 「21세기에의 제언」,「21세기 일본산업의 전망」,「21세기 초인은 번영 국면에」 -.
모두 21세기 타령이다. 그것은 잡지에 그치지 않고 단행본 출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페이스 콜러니 2081년』은 미 프린스턴대 물리학교수 「G·K·오닐」의 번역서 (원제=인간 미래의 희망적 관견·2081년)이고, 『정보혁명 2001년』과 같은 누구의 저술도 있다. 그밖에도 책이름을 대자면 부지기수다.
「새로운 세기」라면 누구라도 구름 위에 들떠 있는 기분이다. 은빛 파도가 저 먼 수평선너머에서 손짓하는 것도 같다. 아니면 공상소설의 세계를 산책하는 흥분조차 갖게 된다.
그러나 따져보면 21세기는 먼 산의 무지개가 아니다. 향후 16년. 그러니까 70년대초가 그리 먼 과거로 생각되지 않듯이 21세기도 잠깐이다. 어쩌면 우리 손이 닿는 곳에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잡지의 글이나 단행본을 읽어보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다. 지금의 문명변화추세는 하나의 궤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향후 16년의 궤도를 그리기란 그리 어려운 것 같지 않다.
물론 오늘의 변화들은 분초를 다툰다. 전자과학자들은 피코초 (1조분의 1초) 를 생각하고 있다.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클 수밖에 없다.
굳이 「호기」취미가 아니라도 21세기는 분명히 우리에게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겨주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지금 21세기 논의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을 호들갑스럽다고 흉을 볼 일이 아니다.
요즘 미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경제학자「레스터·더로」(MIT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장래를 걱정하며 경영인들의 「타임 허라이즌」(time horizon)을 얘기한 일이 있었다. 시간적 시야의 문제.
언젠가 미 경제잡지 「포천」은 미국 10대 정상 기업의 독립사업부문 부장급의 시간적 시야가 2·8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사를 실었었다. 최고 경영자의 지위 유지기간은 평균 5년. 그나마 중견 경영자의 시야는 사반기 (3개월) 에 머무른다. 근시중에도 아주 답답한 근시다.
여기에 비해 종신고용제가 보장된 일본은 장기안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 우리의 시력을 검사해보자. 21세기는 커녕 기껏 88년 올림픽 정도가 고작인 것 같다.미래를 생각하고 탐색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이며 활력이다.
우리는 모두 눈을 다시 떠야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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