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에 민속마을 둥지 틀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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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서 철마다 지내는 시제(時祭)를 기록한 사진자료. 국립민속박물관이 2년 여에 걸쳐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지역에서 할 이‘인류민속분야 문화유산 지표조사’는 보존 방법을 찾는 생태박물관과 민속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행복도시'라 부르기 시작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줄인 말이다. 건설교통부 고시로 지정된 충남 연기군 남면.금남면.동면과 공주시 장기면.반포면 2230만 평은 큰 변화가 없다면 '행복도시'로 탈바꿈하려 땅 위에서 사라진다. 110여 개 자연마을과 3500가구 1만 2000명 주민이 조상 묘를 지키며 대대로 살아온 역사는 불도저에 밀려 흔적도 없이 먼지가 돼야 할까.

3일 오후 연기군 남면 양화리 가학동. 쨍한 겨울날씨지만 전국 각 대학 문화인류학과에서 온 16명 연구원은 자료 수집에 종종걸음이다. '인류민속분야 문화유산 지표조사'를 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홍남) '행복도시 조사단'이다. '행복도시' 건설 예정지역 안에 있는 문화유산을 조사해 사라질 위기의 문화유산을 기록.연구하고 앞으로의 보존.활용 방안을 계획하는 것이 목적이다.

9월부터 시작한 지표조사는 2006년 11월까지, 사진.영상기록인 개발인류학 분야는 2007년 9월까지 모두 2년 여에 걸쳐 계속된다. 예산 15억 6400만 원을 들이는 이런 조사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연구원은 하루 24시간 주민과 함께 지낸다.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제사상에는 뭘 놓는지, 풍수는 어떻게 보고 상여가 나갈 때 요령잡이는 누가 하는지 살피고 기록한다. 사진과 영상 자료도 빼놓을 수 없다. 장례를 치르는 집에 들어가 관 속에 누운 망자도 찍는다. 벽에 붙어 있는 70년대 '가족 계획 상담소' 팻말부터 요즈음 나붙은 '수용자 주민을 위한 보상 전문 변호사 초청 설명회' 현수막도 수집 대상이다. 터럭 하나도 빠트리지 않겠다는 연구원의 집념은 놀랍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과장은 이번 작업이 단순한 조사나 기록의 단계를 넘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대안 제시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벌써 '오래된 물건 삽니다'라는 벽보가 붙었어요. 돌 제품이나 항아리 같은 것부터 빼가기 시작하면 여기 마을의 생활사는 귀퉁이가 허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조사단은 의식주.신앙.일생의례.세시풍속 등을 채록해 남기는 일도 하지만 한걸음 나아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보존해 현장 그대로를 저장하는 마을 민속지 차원의 대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천과장은 이 단계가 최근 새로운 박물관 형태이자 대안으로 환영받고 있는 생태박물관(Eco Museum)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참가를 전제로 한 생태박물관은 역사환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지역을 보호한다. 기존 박물관이 건물.소장품.전문가로 이뤄진 벽 있는 박물관이라면 생태박물관은 지역.전통유산.공동체를 살리는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이다.

문제는 지역민의 동의와 호응을 얻어내는 일과 생태박물관.민속마을 조성 뒤 지속가능한 관리.운영 조직 개발이다. 현재 '행복도시 조사단'은 몇 개 마을을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지만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새 길을 내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김홍남 관장은 "싹 밀어버리고 난 뒤 후회하기보다 미리 우리 역사와 민속을 살리고 보존하려는 이런 움직임은 단군 이래 처음 일인만큼 최선.최적의 해답을 찾겠다"고 말했다.

연기군(충남)=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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