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9)제80화 한일회담(168)-국적, 친일로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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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송 문제에 대해 중립적 입장에 있던 국적이 친일적 자세로 전환한 것은 우리에게 치명적이었다. 유태하 주일 대사가 8월 5일 및 6일에 「야마다」 차관과 「맥아더」 주일 대사를 각각 만난 결과 드러난 것이나 내가 6일 「다울링」 주한 미 대사를 만나 들은 것이나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국적에 접근하는 우리의 대응 자세에 문제가 있었고 근본적으로는 그 당시의 국민 감정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남북한간 및 한일 간의 정치 정황 때문에 연유한 정책의 경직성과 외교적 대응의 미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야마다」 차관이 자세히 밝힌 내용을 보면-.
『북송 계획에 국적의 참여가 확실해진 것은 7월 22일 이후였다. 한때 북송이 실패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친한 로비는 물론 자민당도 「후지야마」 외상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7월말께 「오꾸무라」 주스위스 대사, 「가와자끼」 공사, 「이노우에」 일적 외사부장 등의 보고에 따라 국적 참여가 확고하다는 것이 드러나 정세가 호전돼 「후지야마」 인책론은 들어갔다.
국적 당국은 비밀로 해주길 당부하지만 「오꾸무라」 대사와 「이노우에」 부장을 불러 일적·북적 간의 협정 조인이 지연되면 국적이 한국 측으로부터 계속 시달릴 것이 명백하므로 빨리 협정에 조인하라고 촉구했다. 국적은 나아가 한일 회담 무조건 재개를 제의한 한국측의 의도가 의심스러우므로 일본 대표들은 본국에 서명 시기를 당기도록 건의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7월 말에는 국적측이 심지어 한국 대표단이 있는 제네바를 조인 장소로 이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는 데 이것이 우리가 인도의 캘커타를 선택한 이유다.』
「야마다」 차관은 이러면서 『나는 우리 임장을 정당화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한국측도 조만간 진상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말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야마다」 차관은 『오늘 미국 대사관원들이 두 번씩이나 외무성을 방문해 북송에 관한 그들의 관심을 표명하고 조인식을 8월이 아닌 다른 달로 연기해 줄 것을 권고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우리는 야당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제네바 대표단은 한국 대표단과 국적간의 회담 내용을 즉각 입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귀하는 알아야 한다』면서 『국적은 8월 15일쯤 국적 조사단을 일본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적에 대한 우리측의 대응 전략이 즉시 일본측에 알려져 왔다는 「야마다」 차관의 자신 만만한 언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 자신의 정보 수집 능력을 분쟁의 상대방에게 밝힘으로써 우리측에 모멸감을 주려했던 것이었을까.
물론 그가 그런 어리석은 판단으로 토로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북송 추진자들이 완벽하게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우리측에 북송 봉쇄 노력이 더 이상 무익하다는 점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맥아더」 대사도 「보아시에」 국적 위원장은 조인 장소로 랭군·캘커타 및 홍콩안을 일본측에 제시, 일본이 캘커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다울링」 대사는 『국적의 급작스런 결정은 한국 대표단의 강경하고 거친 의견 제시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한국 대표단은 국적측에 북송은 국적이 관여할 사안이 결코 아니라고 말해 국적측에 이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인상을 주었다』고 미국 제네바 외교단의 정보를 전해 주었다.
「다울링」 대사는 그러면서 『내가 전에 제시했던 것처럼 한국 대표단이 한일 회담을 재개해 국적의 도움을 받으면서 재일 한국인의 귀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적측을 설득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북송은 이제 완전히 기정사실이 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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