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살 넘은 여성, 난자 80% 염색체 이상 … 불임·유산 확률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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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스 교수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차움과 차병원 불임센터를 둘러보고 불임치료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의 불임치료 연구시설과 성과가 굉장히 인상 깊다고 말했다. [사진 차병원]

우리나라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불임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추산한 수치다. 불임으로 인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 결과 불임 환자의 6.1%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12.8%는 이혼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페인 발렌시아의대 산부인과 교수이자 미국 스탠퍼드의대 임상 교수인 카를로스 시몬 발렌스 교수는 불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이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가장 많이 했고, 성공률이 가장 높은 의사로 꼽힌다. 그런 그가 이달 7일 차병원그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발렌스 교수에게 불임 치료의 새로운 경향과 연구활동에 대해 들었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차광렬 차병원 총괄회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지난해 불임 치료 관련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세계적 공헌도를 인정받아 미국 생식의학회에서 주는 ‘차광렬 줄기세포상’을 수상했다. 학회에서 2011년 제정한 상으로 차광렬 회장의 줄기세포와 불임에 대한 세계적 연구 성과와 권위를 인정해 만든 상이다. 불임·생식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차광렬 회장을 직접 만나 공동으로 추진할 프로젝트 회의도 할 겸 방한했다.”

-한국에선 불임 환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라 들었다. 이유는 뭔가.

“가장 큰 원인은 출산 연령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를 늦게 낳다 보니 초산 연령이 높다. 기타 관련성을 연구한 논문들이 있지만 상관관계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가장 확실한 원인은 연령이다.”

-연령이 높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여자와 남자의 위험 요인이 조금 다르다. 여자의 경우 임신 연령이 높아지면 염색체 이상이 될 가능성도 덩달아 증가한다. 보통 41세가 넘으면 난자의 80%에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된다. 난자 10개 중 8개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염색체 이상이 있는 난자가 수정되면 자궁에 착상하더라도 보통 3개월 내 유산된다. 남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정자 수정 시 기형아 확률이 높다.”

-불임시술은 어디까지 발전했나.

“‘단일 난자 시험관시술’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시험관시술(체외수정)을 할 때 여성의 난자를 10여 개 집어넣어 정자와 수정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 중 많게는 3개까지 자궁에 이식해 임신을 시도한다. 그래서 쌍둥이가 많다. 하지만 쌍태아는 엄마나 아이에게 모두 좋지 않다. 유산 확률이 훨씬 높고, 아이도 방(자궁)이 비좁아 불편을 겪는다. 최근에는 건강한 배아를 가려내는 기술이 발달했다. 염색체 이상 등의 문제점을 스크리닝해 가장 좋은 배아 하나만 골라 자궁에 이식한다. 쌍둥이를 피할 수 있고, 남는 배아는 냉동 보관할 수 있다. 건강한 배아만 이식하기 때문에 임신 성공률도 높다.”

-불임시술 성공률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의사의 경험과 숙련도 때문이다. 일부 개원가에 가면 교과서대로 처방한다. 임신이 안 된다면 일단 과배란 주사를 처방하고 그래도 안 되면 인공수정, 또 안 되면 시험관아기 순이다. 그렇게 교과서적으로 하면 성공률이 떨어진다. 환자에 따라 임신이 안 되는 이유가 너무나 다르다. 자궁에 문제가 있는지, 난소나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또 과배란 주사도 환자마다 잘 맞는 제품이 다르다. 의사의 임상 경험에 따라 주사제를 변경할 수 있고, 치료 사이클을 바꿀 수도 있다. 또 병원과 연구실의 수준도 영향을 미친다.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키는 타이밍은 물론 실험실의 온도·습도·시약 사용법까지도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난자를 미리 보관하려는 여성이 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인가.

“앞서 말했듯이 난자 상태는 20~30대 초반에 가장 질이 좋다. 35세가 넘으면 여러 위험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젊었을 때 질 좋은 난자를 미리 채취해 보관하려는 여성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학력·고소득 여성 중심으로 난자 보관 바람이 불었다. 한국 차병원에서도 최근 난자를 보관하는 여성이 상당히 늘었다고 들었다. 요즘은 냉동기술이 좋아 난자를 한번 보관하면 10~15년 이후까지도 쓸 수 있다. 심지어 수정된 배아도 냉동시켜 놓을 수 있다. 불임률을 낮추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 예정인가.

“줄기세포를 활용한 연구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일반 체세포로 생식세포(난자)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난자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 난자가 있더라도 염색체 이상이 있어 유산이 잦은 사람에게도 유용한 치료술이 될 수 있다. 15년 전쯤부터 이 연구를 해왔는데, 현재 줄기세포 생성 단계별 안전성을 점검하고 있다. 5년 후쯤엔 법적인 문제가 없는 한 치료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자궁내막에 문제가 있어 수정란이 착상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문제 부위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정상화시키고 착상을 돕도록 하는 치료법도 개발하고 있다.”

-차병원과 어떤 협력을 할 것인가.

“전 세계의 많은 불임 연구기관을 돌아다녀 봤지만 차병원만큼 특별한 곳은 드물다. 우선 불임 치료를 위한 연구 수준이 매우 높다. 장비·시설·의료진 수준도 상당하다. 특히 줄기세포 연구에 많은 인력과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는 것에 인상깊었다. 앞으로 공동 연구를 통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카를로스 시몬 발렌스 교수는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의대 산부인과 교수이자 미국 스탠 포드의대 임상교수다. 1991년부터 배아의 생존능력과 자궁내막암 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집중된 연구결과를 토대로 1994년 자궁내막증이 있는 여성의 난자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3년에는 자궁내막증 여성의 유전자 발현에 대한 기전을 밝혔다. 세계 유수 저널에 모두 348개의 논문을 발표했고, 10여 개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 체세포를 이용해 생식세포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에서 체외수정 시술을 가장 많이 하고, 가장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의사로 꼽힌다.

차광렬 줄기세포상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생식·불임분야 학회인 ‘미 생식의학회(ASRM)’에서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의 줄기세포와 불임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성과와 권위·공로를 인정해 2011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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