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2)제80화 한일회담(161)미, 일에 영향력 행사|김동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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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7월7일 제네바의 국적사무실에서 일적과 북적대표단은 북송협정조인을 전제로 만났다. 일본측은 원래 이날 협정에 조인키로 비밀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워싱턴과 동경에서 미국관리들이 일본측에 국적승인 없이는 조인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압력을 가해 「후지야마」외상도 어쩔수 없이 일적대표단에 국적승인을 얻은 후에 협정에 조인하라는 훈령을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조인계획은 백지화됐고 일적의 갈서부사장등 10명의 대표단중 「이노우에」외사부장등 2명만 남겨놓고 이날 모두 철수했다. 북적의 이일경 수석대표등 10명의 대표단도 8일 일본측을 맹렬히 비난한 후 귀국했다.
「보아시에」국적위원장은 8일 북송과 관련해 일적과 협상을 개시할 것이지만 북송에 관해 국적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적은 이날 정례이사회에서 제네바협정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의 영향력과 압력이 국적과 일적에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유태하 주일대사는 8일 주일미대사관으로 가 「맥아더」대사를 예방했다. 「맥아더」대사는 「기시」수상을 설득해 당초의 서명계획을 취소시키도록 했다고 말하면서 한국도 이에 상응한 건설적 조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고 보고해왔다.
「맥아더」대사는 『솔직이 말해 일본은 국적승인 없이도 북송을 추진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여론의 강력한 압력때문에 정권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견해는 자민당내 친한파의 거두들인 「이시이」(석정)총무회장과 「후나다」정조회장 및 「야쓰기」씨에게서도 나왔다.
유대사와 9일 만난 이들은 『우리들이 친한 로비이스트라는 세평을 받으면서 북송을 저지못한데는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이시이」총무회장)고 말하고 『유감스런 측면은 일본정부가 북송계획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시」정권뿐 아니라 보수정당 본영의 몰락을 야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우나다」정조회장)이라고 토로했다.
「후나다」정조회장은 『따라서 한일양국의 파국을 면하는 데 우리들이 기여할 수 있는 여지를 한국측이 좀 마련해 주는 것이 좋겠다』며 한일회담 재개를 간곡히 부탁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북송은 기정사실이었다. 미국의 영향력 행사에도 한계가 있음이 명약관화했다.
따라서 차선책이 강구돼야했다. 9일 나를 찾아온 「다울링」주한미대사는 차선책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현재 국적은 북송협정을 검토중이며 조만간 북송계획에 참여할 것으로 봐야한다. 「맥아더」대사의 최대한의 영향력으로 일본도 국적승인을 전제조건으로 하는데 동의했다.
한국만 빼고 모든 나라가 거주지선택의 자유원칙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정부는 유념해야한다.
그 원칙을 받아들이면 국적이 북송희망자에 대한 개별심사를 하고 그럴 경우 북송자는 극소화될 뿐 아니라 장기간의 시일을 요할 것이고 한국정부의 위신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나는 다시 이대통령에게 장문의 건의서를 이날 올렸다. 나는 『최근의 정세를 주의깊게 검토해 그에 맞춰 우리 정책을 재조정할 시기는 바로 자금이 적기』라고 이대통령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다울링」대사를 통해 입수한 국적의 2월26일 각서내용도 분석해 우리가 너무 우리주장만 고집한다면 우리의 국제적 위신만 실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국적각서는 일적과 북적에만 극비리에 수교한 것으로 북송에 관한 국적의 엄격한 역할을 규정한 것임).
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국적이 북송에 관여치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이라고 경고조로 진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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