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의 어리석음을 겪은 후에야 평정의 지혜 깨닫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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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직도 옷장 밑바닥에 서너개 남아있는 대학 1학년때의 옷을 보면 웃음이 난다.
하나같이 노랑 아니면 초록·분홍의 극채색인 까닭이다.
아마 중·고등학교 6년간의 그 칙칙한 교복 색깔에 저도 모르게 반발한 나머지 였을텐데 남아있는 옷들중의 하나인 그 당시 난생처음 마춰 입었던 조끼달린 모직 투피스의 색깔도 만지면 곧 튕겨져 나올것만 같은 짙디짙은 진달래꽃 빛깔이다.
어쩌면 그다지도 유치했던 색감이었을까 싶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건 나만 그랬던 것도 아니어서 졸업직후 여고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보니까 하나같이 빨간 투피스, 노란 원피스들이었다.
정말이지 그때는 그런 색깔외에는 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우겨서 골라 맞추어 주었던 검정과 밤색의 가로 세로 줄무늬가 회색바탕에 놓여져 있던, 지금 생각하면 멋지기 이를데 없는 스프링코트를 내내 쳐박아만 두었다가 나중엔 『그럼 내나 입자』고 어머니가 꺼내 입으셨을 정도다. 일체의 중간색과 무채색을 혐오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학 2학년이 되자 그런 원색은 거들떠도 보게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빌어 갔던 체크무늬 코트도 되찾아 오고 베이지색 스웨터라든지 올리브그린의 코르덴스커트같은 것만 찾았다. 투피스등의 정장따원 입어볼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년후의 일이다.
애가 아파 업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길가 양품점 쇼윈도에 빨간색 스웨터가 한장 걸려있는 것이 눈에 쏙 들어왔다. 무작정 들어가서 샀던 기억이다.
마침 애 아빠 월급 다음날이어서 돈이 있었다. 또 무척 값이 쌌다.
감기걸린 갓난아기 데리고 병원에 갔다 오다가 빨간 스웨터라니 혹시 어떻게 된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면 안되니까 식구들 몰래 옷서랍 밑바닥에 그 원색의 의상을 감추며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었다. 밤마다 우는 아기, 쪼들리는 생활비로 쌓이고 쌓인 신혼초의 피로가 단번에 가시는것 같았다면 과장일까? 더구나 빨간색이라면 질색을 하는 애 아빠의 완고한 색깔기호 때문에 단한번을 입어보지 못하고 종래에는 여동생에게 양도하고 말았다면 그 무슨 낭비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짙은 빛깔의 싸구려 옷을 한벌 사며 내가 받았던 위로는 컸다.
빨간색이라면 으례 적신호를 연상하게 된다. 또 색깔 심리학에 의하면 빨강을 기호하는 심리의 배경에는 뭔가 해치우고 싶은 모종의 난폭성이 도사리고 있다고도 한다. 하긴 그러고 보면 그때 나는 무언가 해치우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대신 애를 업고 빨간스웨타를 샀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또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어떻게 하느나교 나무라기보다는 일상 우리를 다루는 난폭함을 그런 난폭함으로라고 맞서야만 한다고 말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 후에도 원색에 끌린 일은 몇번이고 있었다. 애를 낳았을 때, 남편과 싸웠을 때…. 옷 서랍을 챙기다 보면 그 숱한 위기에 켜졌던 나의 붉은 신호등들, 색동스카프·분홍 털조끼들이 있다. 종당엔 틴에이저 조카들에게 불하되고 말 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예쁜 색깔의 옷들을 아직은 아끼고 싶은 것은 그만큼 내가 내생활을 아끼기 때문이리라. 원색의 강렬함에 대비되어서만 중간색의 평화로움을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또 격정의 어리석음을 겪은 후에야 평정의 지혜가 진정으로 깨달아지는 것은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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