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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개혁으로 소득분배 개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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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지난 20여 년간 빠르게 진행돼 온 우리나라 소득분배 악화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산업, 고용구조 변화와 연결돼 있다. 또한 이러한 구조 변화는 세계화, 기술 발전, 중국의 부상 등과 같은 세계적 환경 변화와 고령화, 노동 부문의 경직성 등과 같은 국내적 요인들이 맞물려 일어난 현상이다.

 중국·인도의 개방과 옛 소련·동유럽의 체제 전환으로 1990년대 이후 세계 노동인구의 약 절반이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돼 제조업과 교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었다. 또한 기술혁신은 생산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해 단순노동이 컴퓨터나 로봇, 기계 등으로 대체돼 왔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기업들은 이제 세계 어느 곳이든 기업활동에 유리한 노동시장, 자본시장에의 접근과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80년대 말 한국의 민주화는 노사분쟁과 임금을 크게 증가시켰고 곧이어 일어난 한·중 수교는 국내 기업들의 중국 및 여타 신흥국으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가속화시켰다. 섬유·신발 등 경공업에 이어 전자·자동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생산시설이 줄줄이 해외로 이전하고 생산 자동화와 더불어 국내 제조업의 고용은 크게 줄게 되었다. 제조업 고용은 91년의 520만 명에서 2010년 380만 명으로 총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년대 후반 29%에서 최근에는 18%로 줄었다. 제조업에서 방출돼 나온 근로자들이 대거 식당, 수퍼, 부동산중개업 등 저수익·저임금의 영세 서비스업으로 몰려들고 불완전고용 상태에 머물면서 소득분배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은 92년의 50%에서 2011년 70%, 약 1700만 명으로 늘어났으나 생산성은 제조업 대비 45%에 불과하다.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은 2000년대 들어 14%나 감소했다. 또한 연금제도가 미비한 가운데 고령화로 무소득·저소득 고령 가구주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도 분배를 악화시키고 있는 주요 요인이다. 소득 최하위 10% 계층에는 가구주 연령이 60세 이상인 가구 비율이 80년대의 10% 수준에서 최근에는 80%로 늘었다. 이들은 경제활성화가 돼도 다시 직업전선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흔히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으로 우리나라 소득분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실제 통계를 분석해 보면 이미 90년대 초·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구조 변화와 더불어 소득분배 악화가 시작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성장이 최선의 분배정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분배구조 악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2013년)가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서도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 집중되는 추세가 점점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는 영국·프랑스·일본을 이미 제쳤고 증가 속도에 있어서는 소득 집중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상위 1%의 실질소득은 성장세가 꺾인 90년대 이후에도 60~70년대와 같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나 하위 90%의 소득은 90년대 중반 이후 정체돼 있다. 따라서 지금의 분배구조에서는 아무리 경제활성화를 한다고 해도 국민 대다수에게는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배구조의 악화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변화, 나아가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진행돼 온 것이기 때문에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경제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지금과 같은 분배구조가 지속되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서민경제가 나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성장세 자체가 둔화될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세계경제 환경 변화에 대응해 우리가 제대로 국내시장 환경을 개선시켜 오지 못했거나 합리적 관행들이 정착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구조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노동 부문 경직성을 해소해 임금의 이중구조를 낮추고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가능하도록 연공급 위주의 현 임금체계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 공정거래질서, 연금제도 강화, 중소기업 정책의 재구성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력 훈련, 교육제도 개편 등 전반적 시스템 혁신을 해나가야 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지금의 복지제도하에서도 향후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저임금 계층에 대한 근로장려세제의 확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 해소, 복지전달체계의 효율화 등 보완적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한 세제개편도 검토돼야 한다.

 정부가 4대 부문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이와 관련해 잘하는 일이다. 노동 부문 개혁이라도 반드시 성공시켜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단초를 열기 바란다. 지금과 같은 분배구조를 방치하면 우리는 사회통합과 성장활력 모두를 잃게 된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