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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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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례1='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2003년 11월 아동 성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한 시간 반이 지나 300만 달러(30여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잭슨은 올 6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례2=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1992년 10월 성애소설 '즐거운 사라'가 너무 '찐하다'는 이유로 검찰에 구속됐다. 음란문서 제조 및 배포 혐의가 적용된 마 교수는 그해 12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에야 풀려났다.

'잭슨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떨까. 죄질과 지명도, 그리고 국민정서상 구속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보석은 꿈도 못 꾼다. 유죄를 선고받고 감방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마 교수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았을 것이다. 증거를 없애거나 달아날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 불려가 본 사람은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를 절감한다. 일단 구속되면 한 가정이 쑥대밭이 된다. 당사자는 회사에서 쫓겨나는 등 일상생활이 마비되고, 가족들도 고통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속을 두려워한다. 피의자들이'성공 보수'를 약속하고 갓 물러난 판.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매달리는 이유다.

구속은 수사편의주의에서 나왔다. 일단 잡아넣어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자백을 쉽게 받아 내려는 발상이 깔려있다. 우리 헌법은 유죄 확정시까지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되며, 자유로운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한다. 형사소송법도 구속 여부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에 따라 판단하도록 돼 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불구속 원칙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하면서 '구속의 딜레마'를 말했다고 한다.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불구속 등을 보면서 "도대체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는 여론을 읽은 듯하다.

불구속 원칙을 확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흉악범이, 성폭행범이, 국민의 세금을 등친 공무원이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거리를 활보하도록 방치해도 될까. 나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 불구속된 가해자가 치료비도 주지 않고 버티고 있을 때도 불구속 원칙을 지지할까. 구속의 딜레마다.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만들어야 할 때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