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건교장관은 칼 뽑았는데 땅값·집값 오히려 더 뛰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3면

경제부총리와 주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나.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 수장에 오른 직후 "올해 초 주가가 1000포인트를 넘은 것은 오버 슈팅"이라고 언급해 증권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1000포인트 시대가 왔다는 핑크빛 전망에 들떠있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으니 한 부총리의 발언은 큰 충격이었다. 부총리가 시장 상황을 잘 짚은 것인지 아니면 증권가가 경제 수장의 정책의지를 읽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후 주가는 1000포인트를 넘어선 적이 없다.

건설교통부 장관과 부동산 시장의 관계는 어떨까.

최근 취임한 추병직 신임 장관은 "부동산값이 급등하면 서민경제는 물론 국민경제에도 큰 부담이 된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밝혔다. 주무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의례적인 메시지다.

그러나 추 장관 취임 이후 부동산 시장은 장관의 의지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이 급등하는가 하면 과열을 우려했던 경기도 판교 신도시 주변 지역도 여전히 강세다. 땅값도 마찬가지다. 파주권을 비롯한 개발 호재가 많은 지역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온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번 일은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장관이 강한 어조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천명했는데도 오히려 가격이 뛰고 있다는 것은 부동산 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게 아닐까.

넘쳐나는 투자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으니 어떤 정책도 용빼는 재주가 없을 게다. 전에는 강력한 처방을 내놓으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지만 지금은 코웃음만 칠 뿐이다.

문제는 집값 안정을 위해 내놓을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그 무섭다던 개발이익환수제, 다주택자의 세금 강화도 밀려오는 투자수요 앞에서는 별 효험이 없으니 말이다.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공급 확대도 오히려 집값만 부추길 게 뻔하다. 집값 상승의 진원지인 강남의 헌 아파트를 모조리 재건축해 공급을 대량 늘린다고 주택값이 안정될 리 만무하다.

정말 해결책은 없다는 말인가. 가수요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뾰족한 방도가 없다. 주택거래허가제, 재건축 규제 강화, 고가주택에 대한 보유세 인상 등을 생각할 수 있으나 수요자들의 저항을 막아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정부 시절 규제를 몽땅 풀어 부동산 경기 부양에 앞장섰던 추 장관의 심정은 어떠할까. 국가의 백년대계보다 표를 더 중요시 해야 하는 정치 장관의 입장에서는 묘안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최영진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