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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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덤핑은 미국 속어에 이따금 등장하는 말이다. 권투선수가 상대방을 때려눕혔을 때 「덤프」라고 한다. 때로는 그 말이 「킬」이라는 말파 똑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죽인다」는 뜻이다.
바로 그 말에서 「덤핑」이라는 경제용어가 탄생했다. 두개의 시장사이에서 형성되는 어떤 상품의 심한 가격차를 두고 하는 말이다. 「두개의 시장」이란 같은 국내에서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국내와 국외 사이의 경우도 있다.
문제는 동일한 시기, 동일한 조건아래 동일한 상품을 놓고 덤핑이 이루어진다는데 있다.
덤핑의 동기는 한 두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과잉상품의 처분, 조업도의 유지, 국내 가격유지, 특정의 시장개척, 자기시장에 대한 제3자의 공략배제, 타인의 시장쟁취, 자기방어를 위한 보복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분명히 「부당」염가이긴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자본주의 경제의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정체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자유경쟁을 통한 발전의 도모다. 「약육강식」이 옳거나 그르다는 논리가 아니라 그것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속성중 하나라는 얘기다.
요즘 경제대국, 특히 미국에서 덤핑소리가 드높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 가소롭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자본주의의 교과서」국인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고 썩 내키는 얘기는 아니지만 GNP 하나만을 두고 보아도 우리나라는 7백억달러(82년), 미국은 3조달러를 넘는다. 그러니까 3백대7. 미국과 우리는 경제규모와 단계에서 이처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미 무역흑자를 놓고 따져 보아도 똑 같은 비유가 가능하다. 일본은 대미 무연흑자가 연간2백억달러 규모다. 우리는 겨우18억달러 정도.
그러나 미국은 보호무역주의의 굴레를 일본의 목이나 한국의 목에 똑 같이 덮어 씌우려 하고 있다. 거인국 치고는 당치 않은 졸장부의 매너다. 한국이 자유세계의 최전방에 있는 나라이고, 이제 막 발전도상국이고, 미국과는 둘도 없는 동맹국이라는 의리는 접어 두고라도 말이다.
요즙「폴·울포위츠」미 국무차관보는 한 연설에서 『우리(미국)는 불공평한 무역관습에 대항할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고 한국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한국 상품이 미국에서 덤핑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이미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덤핑관세율을 적용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여준바도 있었다.
한국이 미국을 때려 눕힌다(덤프)는 발상이다.
헤비급 「알리」가 플라이급 선수를 앞에 놓고 주먹을 휘둘러 보이는 것 같아 실감보다는 웃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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