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앝강변의 백사장이 마을풍광 돋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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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영주서 버스편으로 중앙선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10여분 가다보면 문수면 소재지가 나오고 다시 비포장 도로를 타고 10여분 더 내려가다보면 시내버스의 종착역 와현이 나타난다.
와현서 내리막길로 3km쯤 곤두박질치면 위성천에 휘감겨 마치 물위에 떠있는 듯한 마을이 눈에들어온다.
경북영풍군교수면수도리일.
영조연간에 문절송 김담의 10대손 대가 저가가 있던 이곳 경치에 감탄, 영주로부터 옮겨와 산이래 10대에 걸쳐 2백50년을 살아온 예안김씨의 「살고지」다
이곳 사람들이「무섬」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수도는「무섬」의 한자식 표기.
배(선)모양으로 생긴 마을뒤편에서 영주천과 내성천이 합쳐져 마을을 감아돌아 예천과 안동사이에있는 고평을 거쳐 삼강에서 낙동강본류와 합류하는데 전형적인 사행천을 이루고 있어 옛사람들은 그 지그재그하는 형상을「지현」이라 했다.
「무섬」은 원래 인형조 대의 처가인 심남박씨의 터였지만 40호2백여 예안김씨들이 처마를 잇대고 살고있어 마을전체의 7할이상을 차지했고 있다.
이곳 예안김씨들은 경제적인 풍요보다는 아직도 행세(?)하던 집안의 풍류가 남아 조상들의 고문집등을 뒤지며 글월을 읊는 것으로 양식을 대신하고 있다.
마을 가운데에 대원군의 친구였던 낙풍의 고가가「해우당」이란 대원군의 친필 현판을 단채 옛모습 그대로 서있고 원어가 많이 잡힌다는 내성천의 용틀임머리에「띠앝강변」의 백사장이 마을풍광을 돋운다. 「띠앝강변」은 청록파시인 조지훈이 이곳특유의 어획법인「게맥이」를 하며 시청을 가다듬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지훈이 바로 무섬 예안김문의 사위. 마을입수 동산기슭에는 그의 장인 김성규가 김화진과 더불어 20년대말 신간회운동을 벌이던「아도서리」의 터가 남아있다.
60년대 중반까지 무섬사람들은 강물을 길어 마셨는데 샘을 파면 배처럼 생긴 마을이 가라앉는다는 미신도 있었지만 그만큼 깨끗했다는 증거.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곳에는 모기가 없는 것이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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