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재인 대표의 '국회의원 400명' 발언, 경솔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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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의원 수는 400명이 적당하다”고 발언했다. 논란이 일자 “그냥 퍼포먼스로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거죠”라고 발을 뺐지만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한 포털의 관련 기사에는 반대 1000개에 찬성 3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문 대표의 발언은 호된 지적을 받고 있다.

 문 대표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400명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원을 늘린 뒤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도입하면 직능전문가를 정치권에 영입할 수 있고 여성 30% 할당도 가능하다는 게 문 대표가 내세운 명분이다. 인구 대비로 보면 한국의 국회의원이 유럽에 비해 다소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일본에 비하면 많다. 미국은 1911년 이후 인구가 세 배 늘었지만 의석은 단 하나도 늘리지 않았다. 그래서 인구가 3억 명이 넘지만 의원 정원은 상원 100명, 하원 435명이다.

 전문가와 여성을 영입하고 싶으면 정치개혁을 통해 해소하면 된다. 백번 양보해 그런 소신을 펼 수는 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내뱉었다가 바로 “장난”이라며 꼬리 내리는 모습은 제1야당의 대표로서 경솔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최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현행 300명에서 360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도 부정적 견해가 우세했지만 “특권을 대폭 내려놓고 총비용을 늘리지 않는 범위”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문 대표의 발언은 그렇지도 않았다. 즉흥적이고 설득력이 부족했다.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보는 눈은 싸늘하기 짝이 없다. 200가지가 넘는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서민이나 국가보다는 특권이나 지역의 편에 서려 한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문 대표의 발언은 정치개혁은 뒷전이고 밥그릇만 더 챙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을 받아들여 조정 가능성을 공언한 바 있다. 이번 발언은 약속을 뒤집는 처사이기도 하다. 입이 가벼우면 ‘큰 정치’를 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