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콩나물' 맞나요? … 이름 도둑질 문의 매일 1~2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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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콩나물이 서울대에서 개발한 배양액으로 길렀다는데 맞습니까.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여요.” 지난달 중순 서울대 산학협력단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남성은 다짜고짜 자신이 산 콩나물이 "서울대 콩나물이 맞느냐”고 따졌다. 산학협력단이 농업생명과학대학 등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전혀 모르는 내용”이란 답이 돌아왔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한 콩나물 업자가 블로그 광고 등을 통해 ‘서울대에서 개발한’이란 문구를 남발하고 있었다. 콩나물 업자는 “서울대 명칭을 도용한 만큼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장을 받고야 광고를 내렸다.

 서울대가 자칭 ‘서울대 제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하루에 최소 한두 건씩 “서울대에서 만든 게 맞느냐”는 문의·항의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 3월까지 소송이나 경고장 발송을 통해 시정조치를 한 경우만 64건에 이른다.

 상당수 업체는 ‘서울대에서 공동 개발한’ ‘서울대에서 임상시험을 거친’ ‘서울대 OO평가단이 인정한’ 등의 문구를 제품이나 포장지에 허락 없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 한 업체는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서울대 점퍼를 입히고 서울대 로고와 ‘서울대학교 기술지주 가족회사’란 문구가 찍힌 건강식품을 판매하다 적발됐다. 산학협력단 측은 “예전에는 서울대 도서관에 책을 기증한 뒤 서울대가 인정한 동화책이라고 하거나 서울대병원에 몰래 신제품 음료수를 놔두고 의사가 가지고 들어가면 ‘서울대 교수가 즐겨 마시는’이란 문구를 써서 홍보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용은 사교육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서울대 캠프’란 이름을 쓴 A학원을 고소했다. A학원은 고교생 30명을 서울대 정문에 집합시킨 뒤 서울대 캠퍼스를 둘러보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였다. 또 강의실을 빌려 서울대 학생에게 강의를 시켰다. 자체적으로 제작한 ‘명예 서울대 학생증’도 줬다. A학원은 “서울대에서 밥 먹는 게 불법이냐”고 반발하다 고소를 당한 후 캠프를 없앴다. 또 다른 학원은 ‘서울대입구역에서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광고에 서울대 로고를 썼다. 조서용 산학협력단 지식재산관리본부장은 “대부분 건강식품이나 교육서비스 분야에서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용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산학협력단은 지식재산관리위원회를 통해 서울대 상표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서울대 개발기술을 적용하거나 ▶기술사용료를 지불하고 ▶신뢰할 만한 기업인 경우에만 계약을 통해 사용을 허락한다. 현재는 오헬스·마니커·SPC·소이밀크·나이벡 등 10개 안팎의 상품에서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서비스 분야는 동문이 운영하는 병·의원, 약국, 동물의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를 상표로 인정해 달라”고 청구해 최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것도 상표 도용을 막기 위해서다. 조 본부장은 “종전까지 소송을 통해 도용이 왜 잘못된 것인지부터 다툼을 벌여야 했다”며 “이제는 ‘서울대학교’ 상표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도용 자체가 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종 피해자는 서울대 공신력을 믿고 제품을 사는 소비자”라며 “의심스러울 경우 산학협력단 홈페이지나 전화로 문의를 해달라”고 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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