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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반한 음질·디자인 손 안의 음악 감상실 혁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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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22면

나이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 선배의 말을 수긍하지 못했다. 이젠 나도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진다. 절대 나이 탓은 아니다. 멋진 음악을 빨리 듣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다. 디지털 파일로 음악 듣는 일이 이토록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음악은 당연히 LP나 CD 같은 실물 음반을 거쳐야 한다고 믿었다. 평소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음악을 듣는 자체가 불경스러운 행위라 여기지 않았던가. 적어도 오디오만큼은 보수 꼴통의 답답한 아저씨를 자처했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14> AK 240

순정은 더렵혀지게 마련이다. 작은 디지털 오디오 기기 하나가 생활을 헝클어 놓았다. 음악 듣는 즐거움을 회복시켜준 변화는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저기 처박아 놓았던 CD를 다시 꺼내 듣는다. 이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연주의 행간에 감추어진 디테일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CD로 듣는 음악의 미진함은 연주와 녹음의 부실함 때문이 아니었다. CD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소니와 필립스가 공동 개발한 CD가 세상에 나온 지 33년 정도가 흘렀다. 당시 ‘레드북’이라 불렸던 CD규격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진다. 33년이란 세월은 LP가 만들어진 기간과 별 차이가 없다. 하루가 멀게 느껴질 만큼 급변하는 디지털 세계다. CD는 놀랍게도 엄청난 시간 동안 장수하고 있는 이례적 포맷이다.

초기의 기술 규격을 지키고 있는 CD란 당연히 모자람이 많다. 이후 기술 발전에 맞춰 1999년 DSD(direct stream digital) 방식의 SACD(super audio compact disc)가 나온다. CD보다 더 나은 음질을 자랑했지만 이미 엄청난 양으로 보급된 CD의 아성은 넘지 못했다. 극소수의 오디오 파일만이 사용하는 비운의 포맷으로 머물게 된 이유다. 세월이 또 흘렀다. 여전히 SACD에 담긴 DSD 방식은 현존 최고의 음악 포맷이다. 아까운 내용물은 버릴 수 없다.

절치부심 아이리버, 높은 완성도로 존재감 확인
스마트폰이 DSD 방식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이제 젊은이들은 실물 CD를 사지 않는다. 음악 파일을 스마트폰에 담아 듣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질수록 더 나은 음원의 필요를 실감하게 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른다. 현재 DSD 방식을 포함한 녹음 스튜디오 수준의 MQS(mastering quality sound) 음원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본격적 음악 감상을 위해선 스마트폰만으론 모자란다. MQS의 실력은 엄청나다. 녹음의 디테일은 음악과 음악을 둘러싼 분위기와 열기까지 담고 있다. 이 상태를 경험한 이들은 하위 디지털 포맷의 음질을 싱거워한다. 음악적 감동의 기대와 열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제대로 재생하기 위한 오디오 기기가 절실해진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기여한 발명품 가운데 MP3가 있다.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리버’의 활약은 통쾌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팟’도 아이리버의 놀라운 성능은 따라잡지 못했다. 하지만 후발주자 아이팟은 MP3에 감성을 입혀 역전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이리버는 그동안 절치부심 재기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2012년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물건을 만들어냈다. ‘Astell & Kern 240’이 그 주인공이다. 성능의 개선만으론 모자란다. 이전에 없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면 안 된다. 최고의 음질과 디자인을 양립시켜야 한다. 음악을 들으며 전율케 하고 물건의 완성도로 존재감을 확인시키기로 했다. 음악적 울림으로 감동의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완성의 모습이 아니다. 커다랗고 복잡한 기기의 조합이라면 이미 여러 나라에서 만든 제품들이 즐비하다. 이는 새로움이 아니다. 손에 잡힐 정도의 크기에 성능을 압축시킨 모습으로 결정했다. 이를 해결할 IT 기술과 역량을 갖춘 나라는 거의 없다. 작은 크기에 지금까지 만들어진 여러 방식의 음악 파일을 최고의 음질로 듣게 해준 디지털 파일 플레이어의 고향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소리 전문가’ 유국일의 역작
음악의 감동은 정량화시켜 증명하기 어렵다. 인간의 귀와 감성의 동조로 이루어지는 자발적 공감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감동의 지점을 찾아낼 사람이 있다면 가능하다. 평생 궁극의 음을 추구했던 한 사람이 있다. 때론 미치광이 같았고 현실 부적응의 폐인처럼 보였다. 가산을 탕진하고 죽음마저 생각했던 인물은 최고를 향한 오기마저 버리진 못했다. 아이리버와의 극적 조우는 음악적 감동의 지점에서 접점을 찾았다.

그의 이름을 안다. MSD란 스피커 메이커의 주재자인 유국일은 금속소재만 다루는 디자이너이자 음의 조율 전문가다. 그가 만든 스피커의 아름다움은 모두를 경탄하게 만든다. Astell & Kern 240의 멋진 디자인은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스위스의 정밀기계를 보는 듯한 정교함과 파격의 형상은 평소의 기량을 옮긴 것뿐이다. 실물을 본 순간 평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만드는 작품은 소리를 내는 금속 디자인이다.”

Astell & Kern 240 음의 조율 또한 오랜 경험을 녹여낸 결과다. 독일 사정에 밝은 그가 택한 방식은 기준이 되는 음악을 통째로 외운다. 수백 번 반복해 들은 음악의 세부를 정확하게 기억해 전후를 파악한다. 집념과 오기의 시간이 키워준 놀라운 능력은 추상적 음의 경계를 선명하게 구분했다. 더해야 할 부분과 빼야 할 부분의 판단이 선다면 모두의 공감은 쉽게 찾아진다.

아무리 좋은 것도 통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Astell & Kern 240의 완성도를 확인한 세계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주요 국가의 저널들은 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의 완성도와 놀라운 음질에 열광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 타임스조차 새로운 디지털 기기의 출현을 반겼을 정도다. 우리 제품에 대해 악의적 표현마저 서슴지 않는 일본의 오디오 전문지들이다. 실물과 성능을 확인한 이후 평론가들은 “일본은 왜 이런 물건을 만들지 못하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마저 냈다. 홍콩 면세점 가격이 국내 판매가 보다 훨씬 높은 기현상도 벌어진다.

디지털 기기의 관심은 몇 달에서 1년을 지속하지 못한다. Astell & Kern 240은 2년 넘게 부동의 최고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분간 이를 능가할 제품이 없을 전망이다. 불가능하다 여겼던 기술적 난제들의 해결과 좋은 음으로 증명된 결과다. 디지털 기기의 명품이란 너무나 짧은 기간만 통용되는 신기루 같은 것일지 모른다. 전진을 멈추면 안 된다.

Astell & Kern 240이 세운 모처럼의 후련한 기록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 최고를 경험했던 아이리버의 재기로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가야 할 당위성이다.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하는 애매한 창조경제의 해법을 제 발로 연 기업의 성공이 해될 리 없다. 누가 뭐래도 나는 Astell & Kern 240의 열혈 사용자다.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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