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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안 돕겠다는 동교동계 … 반감의 뿌리는 대북송금특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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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6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추도사에서 “(정부는) 희생된 분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모든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이 총리, 김무성 새누리당·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천호선 정의당 대표,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제주=뉴시스]
박지원

‘후보 난립으로 야당표는 쪼개지고, 호남도 등을 돌리고 있다.’ 3일 공개된 본지 여론조사에서 최악의 예상 시나리오를 받아든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에 비상이 걸렸다. 발등의 불은 동교동계, 나아가선 호남 끌어안기다.

 지난달 31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때 시도된 즉석 거수 투표에서 동교동계 인사 50여 명은 “(맏형인) 권노갑 고문의 선거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혀 친노무현계(친노)에 대한 격한 반감을 표출했다. 접전지인 광주 서을이나 서울 관악을 등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재다. 동교동계에선 3일에도 문 대표의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을 두고 “후보들의 사무실 개소식에조차 참석하지 않으면서 마치 동교동계의 비협조로 선거를 망치는 것처럼 구도를 만든다” “선거가 급한데 제주도에서 새누리당 원희룡 지사를 만날 때냐”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여당보다 당내의 친노에게 더 총구를 겨눌 만큼 양측의 갈등은 심각하다. 동교동계가 표출하는 반감의 뿌리는 무엇일까.

 시작은 10년도 더 전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수용한 대북송금 특검, 이후의 열린우리당 창당 사건이다. 대북송금 문제는 200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5억 달러를 줬다는 의혹이다. 특검으로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DJ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구속됐다. 동교동계는 “노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배신행위”라고 주장해왔다. 지난 2·8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박지원 의원은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았다. 내 눈이 이렇게 된 것도 특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2003년 DJ의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것은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으로 불리던 당 내 신주류 의원들이었다. 당시 이들이 노 대통령과 가까웠기 때문에 “우린 호남 출신 한화갑 대신 영남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밀었는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팽 당했다”는 게 동교동계의 정서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교동계 출신이면서 노무현 청와대 첫 비서실장이었던 문희상 의원은 “모두가 오해”라고 했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도 다시 국회를 통과하도록 여야 간 합의가 돼 있었다. 노 대통령이 옴짝달싹할 공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해선 “당시 비서실장이던 내가 의원들을 공관으로 불러 신당 합류를 말렸다. 대통령의 뜻이 신당 추진이라면 실장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DJ와 노 전 대통령은 그 뒤 만나 앙금을 풀었는데 아래에선 아직 갈등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겨난 양측의 악감정은 이후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면서 계파 갈등이 심화됐다. 이희호 여사까지 박지원 후보 지원에 나섰지만 패한 2·8전대, 양측의 대리전 속에 또다시 근소한 차이로 문 대표 측근(정태호)이 이긴 관악을 재·보선 후보 경선을 거치며 쌓인 동교동계의 불만이 ‘DJ 묘역의 거수 투표’로 폭발한 셈이다.

 야권 후보가 난립한 상황에서 표 분산을 가져올 친노 대 동교동계 간 갈등은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친 게 확인될 경우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문 대표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건 그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3일 간담회를 자청해 “문 대표와 권노갑 고문이 5일 만날 것이며, 이 자리에서 (권 고문이) 선거를 적극 돕겠다는 의지를 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 지원 요청을 받고 있는 박지원 의원은 여전히 “선거운동기간은 16일부터라 아직 시간이 남았다”며 명확한 답을 피했다. 대신 “명분을 중시하는 제게 문재인 대표가 모양새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서승욱·정종문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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