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바람대로…차두리 이기고 대표팀 은퇴했다

중앙일보

입력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축구대표팀과 뉴질랜드의 평가전 하프타임.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도열한 가운데 차두리(35·FC서울)가 경기장에 재등장했다. 팝송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영웅)'와 함께 전광판에 차두리를 위한 헌정 영상이 나왔다.

등번호 22번과 'CHA Duri'가 금색으로 새겨진 대표팀 유니폼 입은 차두리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차두리는 꽃다발을 전해 준 아버지 차범근(62)의 품에 안겨 한참을 흐느꼈다. 차두리는 "전 분명 해온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전 잘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열심히 하려고 애썼고, 여러분들이 조금은 알아주신 것 같아 행복하게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황선홍(47·현 포항 감독)과 홍명보(46)가 그 해 11월 브라질과 은퇴경기 때 그랬던 것처럼 차두리도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전반 43분.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은 예고대로 차두리를 교체아웃 시켰다. 개인통산 네 번째로 대표팀 주장을 맡아 오른쪽 수비수로 선발 출전한 차두리는 기성용(26·스완지시티)에게 주장완장을 넘겨주며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이어 차두리는 손흥민(23·레버쿠젠)과도 작별의 포옹을 했다. 손흥민은 스포츠용품 후원사에 요청해 제작한 '두리형 고마워'란 자수가 새겨진 특별 축구화를 신고 나왔다.

차두리는 자신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창수(30·가시와)와 교체됐다. 3만3514명의 관중들은 '차두리 고마워'라고 적힌 빨강색 응원도구를 흔들고, 기립 박수를 보냈다. 뉴질랜드 선수들까지 박수를 보냈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한국 선수 중 차두리 같은 스피드와 체력, 힘을 두루 갖춘 선수는 없다. 당분간 차두리 같은 선수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며 “그 동안 차두리의 뒷모습을 많이 봐왔지만 오늘처럼 아름다운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대표 선수로 마지막 43분. 차두리는 차미네이터(차두리+터미네이터)라는 별명답게 강렬했다. 쉼 없이 오른쪽 터치라인을 오갔다. 한국은 전반 37분 한교원(전북)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하프라인에 서있던 차두리는 손사래를 치며 페널티킥을 차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손흥민이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지만 뉴질랜드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차두리는 이날 전반 43분 동안 4.5km를 뛰고, 최고 속력 30.6km/h를 기록했다.

한국은 후반 40분 김보경(위건)의 슈팅이 골키퍼가 쳐낸 볼을 이재성(전북)이 왼발로 밀어 넣어 골망을 갈랐다. 선수들을 벤치에 앉아있던 차두리에게 달려가 안겼다. 곽태휘(알힐랄)는 환하게 웃으며 차두리의 민머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기고 대표팀 은퇴하라"며 차두리에게 은퇴경기를 마련해 준 가운데 한국은 이날 1-0 승리를 거뒀다. 차두리는 이기고 대표팀을 떠났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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