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책세상] '3미터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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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미터의 삶/이노을 지음, 오늘의책, 7천5백원

10대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하치 이야기'(책이있는마을)'다이고로야, 고마워'(오늘의책)의 공통점은? 동물이 주인공이라는 점, 그리고 그 동물이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 무엇인지를 사람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현대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가 바빠져 정감어린 대화를 나눌 10분의 여유조차 없게 됐다. 이런 각박함이 우리 아이들의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 것은 아닐지.

그러나 동물 이야기가 잘 읽히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아이들도 사랑의 대상을 찾고 싶으며 표현 방법을 잘 몰라 안타까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3미터의 삶'도 정에 목말라 하는 10대들의 정서를 건드려 주고 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

유민이는 부모가 시장에서 식당을 꾸리고 있어 언제나 외톨이다.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외치면 "숙제는 안 하고 놀기만 하니"라고 핀잔을 줄 엄마의 잔소리도 그립기만 하다.

유민이는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 없는 집안으로 들어와 옆집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시큰둥하게 밥술을 뜨곤 한다. 그러다 셰퍼드 새끼 명랑이를 기르게 된다.

나를 위해 기다리는 이가 집에 있고,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이런 행복을 가져다 줄 줄이야. 그러나 애틋하게 키워온 명랑이가 홍역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고 유민이는 그동안 꾹꾹 참던 외로움의 눈물을 터뜨려 버리고 만다.

책은 전직 카피라이터이자 동화작가이며 시인인 저자가 동물의 감동적인 사연을 수집해 32편의 단편으로 꾸민 것이다. 일부 각색이 되기는 했지만 이야기는 동물보호단체 등에서 수집한 실화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수해로 집이 떠내려가기 일보 직전에 주인 노부부를 구해내고 죽은 누렁이 벤, 심장마비로 죽은 주인 옆에서 같은 시각 잠든 듯이 죽어버린 늙은 개돌이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 제목에 나오는 '3미터'란 개우리의 공간을 이르는 말. 묶어 놓으면 행동 반경이 3m에 불과한 개이지만 사람에게 오히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약속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세상의 따뜻함만을 강조하는 책이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TV 동화 행복한 세상'(샘터)을 보자.

가족의 가치, 사랑을 내세운 짧은 읽을거리인 이 책이 각광받는 까닭은 아마도 옹달샘처럼 잠시 쉬어가는 곳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의 욕구 때문은 아닐는지. 10대들의 욕구도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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