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야신(野神) 김성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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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캠프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급기야 시범 경기부터 매진이었다. 지난 7일 대전구장, 한화 이글스와 LG 트읜스의 시범경기, 1만3000석이 꽉 들어찼다. 그 다음날도 매진이었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한화의 대전구장, 정규경기도 아닌 시범경기였지만 두 경기 연속 매진이었다. 이유는 누가 뭐래도 바로 김성근 감독이었다. 스타선수가 아닌 감독에게 보인 팬들의 이례적인 관심, ‘야신(野神)의 귀환’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2012년 9월 7일, 김성근 감독을 만나기 위해 고양 원더스 구장을 찾았다. 김 감독을 만나러 가며 2007년의 인터뷰 기억을 떠올렸다. 문자 메시지 때문에 만났었다. ‘나를 흔든 문자 하나는 무엇인가’란 주제였다.

‘대장이 기운 없음 어떡해요.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요.’

‘기적은 인간의 계산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 만큼 했으니 믿음을 갖죠. 9회 2아웃 글러브에 들어간 공도 튀어나왔잖아요.’

‘빨리 기운 내서 오늘은 선수들 무거운 맘 덜어주고 편하게 해줘요. 김부자 홧팅! 사랑합니다. ^^’

2007년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내리 진 후 당시 SK 전력분석팀장이던 아들 김정준이 아버지 김성근 감독에게 네 번에 걸쳐 보낸 문자 메시지다. 그때까지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첫 2연패 뒤 우승에 성공한 팀은 없었다.

“그때까진 2패한 것을 자책만 했지. 아직 2패가 남았다고 마음을 바꾸게 됐어.”

그 후 SK는 극적인 4연승으로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우승 후 한결 여유로울 것이라 지레 짐작했지만 김 감독은 그 다음 시즌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팀들은 전력을 보강하고 있는데, SK는 전력 보강이 없어 걱정이라 했다. 우승 멤버 그대로인데도 다음 시즌 고민, 과연 김성근 감독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우승감독이 아닌 독립야구단인 고양원더스 감독으로서의 인터뷰다. 고양시 국가대표훈련장,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리 저리 둘러볼 여유가 있다. 야구장으로 들어섰다. 9월 초, 여름 막바지 햇살이지만 여전히 뜨겁다. 그 뙤약볕에서 훈련 중인 선수들, 하나같이 새카맣다. 하도 까매 흰 눈자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선수들. 프로에서 퇴출되었거나, 부상으로 그만 두었거나, 아예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이 모인 독립야구단,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딱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감독실로 들어섰다. 벽면엔 김 감독의 대형 사진이 걸려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첫 느낌이 들었다. ‘야구의 신(神)’이라 불리던 최고의 감독과 외인구단, 물과 기름같이 한 데 섞이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김 감독은 이 자리에 있었다. 청바지에 꽉 끼는 티셔츠를 입은 김 감독이 들어섰다. 우리 나이 칠순을 넘겼다. 복장 탓인지 유난히 젊어 보인다.

“감독님 젊어 보이십니다.”

“요새 주름이 부쩍 늘었는데…. 젊게 살아야 되는데….” 허허 웃는다.

벽에 걸린 대형사진을 등지고 앉았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그 자리에서도 훈련하는 선수들이 훤히 보인다. 본능적으로 신경이 그쪽으로 가나보다.

인터뷰 중 간간이 오가는 선수들에 관한 질문과 답변, 답변의 호칭은 항상 ‘선수들’이 아니고 ‘아이들’ 이다.

“오늘 아이 하나가 두산에 가게 됐어. 홍재용이라는 아인데….” 목소리가 분명 들떠있다.

“더 뛰어서 더 많은 아이들을 프로에 내보내야지. 그래야 또 다른 아이들에게 기회가 생기겠지.” 이것이 고양 원더스가 존재하는 이유고 보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선수 한 명을 또 떠나보냈다고 했다. 야구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했는데 그 선수의 어머니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아버님(김성근), 우리 아들이 입대하면서 봉투 하나를 줬어요. 5000엔(당시 약 7만원)이 들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아버님께 되돌려 드린다고요.’

5000엔은 김 감독이 지난 설에 선수들에게 준 용돈이었다. 감독에게 처음으로 용돈을 받은 그 선수는 입대 전 돈 봉투를 어머니께 맡겼다. 그 어머니는 “야구밖에 몰랐던 우리 아들이 이제 어른 다 됐다”고 고마워하며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감독에겐 아이들, 그 아이들에겐 아버님인 게다. 자꾸 듣다 보니 ‘아이들’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프로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지. 얘들 하나하나 사연이 있어. 다 드라마지. 야구할 기회를 가진 걸 고마워하는 거야.”

인터뷰중에도 뙤약볕에서 계속 연습중인 그 아이들, 계속 돌아가며 쉼 없이 외친다. ‘파이팅’이라고…. 이 함성은 동료를 위한 독려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것일까?

김 감독이 인터뷰를 하면서도 자주 고개를 돌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유니폼을 입어 달라고 했다. 스스럼없이 벗는 티셔츠, 칠순의 몸이 아니다. 조명 준비하다 말고 급히 카메라를 들었다.

“뭘 이런 걸 찍어” 하며 멋쩍게 웃는다.

“아! 죄송합니다. 몸이 정말 좋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도저히 칠순이라 믿어지지 않습니다. 젊은 저보다 더 좋으신데요.”

“틈 날 때마다 운동을 하지. 저기 묶인 튜닝밴드 보이지. 오다가다 당기면서 운동을 해야 몸이 굳지를 않아.” 그러면서 마치 내 몸을 쓱 훑어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저절로 숨을 멈추고 배에 힘을 줬다. 김 감독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 저절로 그리 되었다. 야구공에 사인을 해 달라 요구했다. 항상 ‘一球二無(일구이무)’란 글귀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김없이 ‘一球二無’를 쓴다.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타자든 투수든 공은 두 번이 없으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뜻이지. 일본에서 건너와서 고생 많이 했지. 학맥ㆍ인맥도 없고 항상 혼자였어. 이겨내야 했어. 한 발만 물러서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했지. 진정한 위기관리는 위기가 오지 않게 미리 준비하는 것이니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해야지.”

바로 이 ‘一球二無’의 정신이 ‘김성근의 야구’다.

이 인터뷰 당시 고양 원더스와 김성근 감독의 1093일의 야구와 삶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파울볼‘로 4월2일 개봉 예정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야신의 야구,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에겐 또 다른 ‘一球二無’의 시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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