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육아휴직, 엄마·아빠 반반씩 권장 … 호응 폭발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스웨덴은 지난 20년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아니카 스트란달 스웨덴 사회보장 장관은 “양육에 대해 부부간 책임을 공유하도록 하는 게 출산을 늘리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스웨덴의 출산율은 1.89명(2013년)이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2.1명)에는 못 미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높다. 출산율 고민을 안고 있는 나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최근 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의 방한 일정을 수행한 아니카 스트란달(40) 사회보장 장관에게 국내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의 면담 요청이 쇄도한 이유다. 지난 25일 만나 한국이 최하위 출산율(1.21명)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물었다.

 - 스웨덴 출산율 제고의 핵심 정책은 뭐였나.

 “1970년대 초반 보육 지원과 육아휴직을 패키지로 묶어 동시에 확대한 게 핵심이었다.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해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직장을 쉬면서 직접 돌보게 하고, 아이가 더 크면 낮은 비용으로 고품질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안전(secure)하게 느끼게 하려 한 것이다.”

 - 육아휴직 도입으로 출산율이 바로 올라갔나.

 “아니다. 육아휴직을 여성들만 쓰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자리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생겨났고, 그후로도 출산율은 10년간 내리막길이었다. 그래서 95년 ‘아빠의 달’ 제도를 도입했다. 육아휴직(15개월)을 엄마와 아빠가 반반씩 나눠 쓰도록 권장하면서 그중 한 달씩을 아빠와 엄마에게 각각 배정했다. 배정받은 달은 상대방에게 넘길 수 없고, 본인이 쓰지 않으면 없어진다.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이 전체를 다 쓰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 어떤 결과가 나타났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육아휴직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비중이 75년 0.5%에서 25%로 높아졌다. 성공에 힘입어 아빠·엄마에게 배정된 달을 2002년 2개월로 확대했다. 나도 딸(11, 6세)의 육아휴직 480일을 남편과 정확히 반반 나눠 썼다.”

스웨덴 출산율은 99년 1.5명(사상 최저)에서 1.9명 수준으로 올랐다.

 - 남성 육아휴직 확대와 출산율은 관련 있나.

 “스웨덴에서 여성과 남성은 소득이나 교육 수준 등 사회생활에서 꽤 평등한 편이다. 다만 가족을 꾸리기 전까지만 그렇다. 자녀를 낳은 이후부터는 격차가 벌어져 여성 임금이 낮아지고 파트타임 일자리가 늘어난다.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는 양성평등을 실현해 고용과 출산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육아휴직 사용에 성별 구분이 없으면 여성도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다. 육아휴직이 당연한 권리가 되면 자녀를 낳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과거 스웨덴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회사에 충성심이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란 평이 나온다.”

 - 스웨덴은 여성고용률도 82.5%로 높은데.

 “저출산 사회에서 여성 고용률은 매우 중요하다. 여성도 일을 해서 자기 연금을 확보해야 젊은 층의 노인부양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을 때 여성과 노인의 노동력까지 활용하지 않으면 경제와 복지제도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여성과 노인이 일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만드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 양성평등적인 사회 문화가 필요하겠다.

 “우리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도 있듯이 현 정부는 자칭 스웨덴 역사상 첫 번째 페미니스트 정부다. 국방·외교·무역 등 모든 국가 정책에 성평등적 시각을 도입하는 것을 국정 최고 어젠다로 정할 정도다. 이게 모두의 비용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 출산과 여성고용 제고 정책을 세울 때 유념할 점은.

 “출산과 일자리같이 문화를 바꾸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스웨덴도 60년대 후반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지자 정치권과 사회 여러 곳에서 어젠다로 다뤘다. 70년대부터 시작해 40여 년 만에 변화가 왔다.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앞을 내다보고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가리켜야 한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