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밥과 친구가 있는 학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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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22면

지방대학 교수였던 어머니는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아들이 먹을 일주일 치 도시락을 미리 챙겨주는 게 큰일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같은 반찬을 담은 일주일치 도시락으로 냉장고가 가득 찼다. 한 주 내내 같은 메뉴였지만 솔직히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친구들과 책상을 붙여 도시락 반찬을 나눠먹었다. 숟가락 하나 들고 ‘빈대’ 붙는 친구가 오면 반찬 위에 침을 뱉어 방어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꽤 잘했지만 돌이켜보면 공부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과 밥을 함께 먹던 일은 생생하다.

그 기억을 일깨워준 일이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문제로 부모 손에 이끌려 나를 찾아온 10대 환자 얘기다.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가족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왕따 피해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과는 잘 지냈다. 그렇다고 정신과적으로 우울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게임하느라 학교를 툭하면 빼먹는 것이 문제였다.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학교는 재미없어요.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학교에 왜 가야하죠?”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내 생각의 흐름이 탁 멈췄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혼연일치 돼 달리는 학교에서 이 아이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못한다고 분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흥미가 없을 뿐이다. 노력은 해봤지만 쉽사리 성적이 오르지 않고 이미 망친 내신이라 4년제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운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학교에 가 우두커니 교실에 앉아 무슨 말인지 모를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여길 만했다. 솔직히 반박할 논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싫어도 학교는 다녀야지”란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에선 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학교에서 그저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일러스트 강일구

그때 고등학교 기억이 떠올라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학교는 밥 먹고 친구 만나러 가는 거야. 우리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만약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라면 소수의 우등생을 제외한 나머지에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좌절의 공간이 된다. 그러나 학교를 따뜻한 점심 한 끼 먹고, 친구들 만나 사회성을 기르는 곳으로 본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등교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요즘 난 영어단어 몇 개 더 외우는 것보다 적절한 사회성을 획득하는 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수많은 우발적 폭력도 사회성 결핍으로 일어난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와 부모는 처음엔 어리둥절해 했지만 말이 통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그리고 전보다는 자주 등교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처럼 더 많은 10대가 학교를 즐길 수 있게 하려면 학교 가는 목적을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명제는 앞뒤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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