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 총리 "개가 짖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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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정책사회부 기자

"개가 짖으면 계속 짖도록 둬야 한다."

12일 이해찬 총리가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 발언이다. 일본 극우단체 인사들의 잇따른 망언에 대한 대책을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서양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며 이 같은 말을 했다. 그는 또 "개가 계속 짖으면 시끄러워져서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일본 측 인사들을 '개'에 비유한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급속화하고 있는 우경화 경향에 대해 나름대로 우려를 표명한 것이지만 너무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라는 지적이 많다.

이 총리는 지난 4일의 국무회의에서도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은 경제에 비해 외교가 낙후돼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총리는 13일 임시정부 수립 86주년 기념사에서도 "(일본의 우리 측)역사와 영토에 대한 도전은 우리의 자주독립에 대한 부정으로, 이를 용납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추호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세기의 야만적 유물인 제국주의의 부활은 아시아인들뿐 아니라 일본 자신에도 재난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일련의 발언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딱히 의도한 발언은 아니고 총리가 평소 생각한 바를 가감 없이 밝힌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 총리의 발언은 일본 측 망언에 분개하는 대다수 국민의 정서에 부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 외교학자는 "상대방이 거칠고 생떼를 부리는 듯한 발언을 한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의 발언을 통해 상대방을 자극해야만 하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총리는 대통령 다음으로 많은 권한을 가지고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2인자다. 당연히 그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고, 국제적으로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보다 전략적이고 치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 총리가 헤아리기를 바란다.

강갑생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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