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닮은 러시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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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39면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무심코 모국과 지금 살고 있는 나라와의 공통점을 찾게 된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언뜻 한국과 러시아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두 나라를 가깝게 만드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음식도 이에 해당한다.

“아니, 한국 사람들은 짜고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고 러시아 음식은 기름기가 많고 거의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거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선 말기 고추가 들어오기 전 한국 음식은 많이 맵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한국 김치도 아마 압도적으로 백김치가 주종을 이뤘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인도 김치를 담가 먹었다. 배추 종류는 다르지만 김치는 예전에 러시아인의 기본 음식 중 하나였다. 특히 한국 김치와 러시아 양배추 김치는 만드는 시기도 비슷했다. 옛날 러시아에서는 9월 말에서 10월 초가 김장철이었다. 큰 나무 통에 양배추를 담가 추운 겨울에 먹곤 했다.

유사한 전통 음식이 또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즐겼던 양배추 김치찌개다. 후에 양배추 김치찌개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버르쉬’라는 음식에 밀려 인기를 좀 잃었지만 여전히 가정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러시아 손님에게 한국 김치찌개를 소개할 때 흔히 한국식 ‘스치’(러시아의 양배추 김치찌개)라고 말한다. 그러면 러시아인들은 어떤 음식인지 쉽게 이해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민족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또한 “무슨 소리냐”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러시아인도 한국인처럼 어려운 상황을 강한 인내심으로 극복하는 성향이 강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읽었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살펴보자. 나폴레옹과 전투를 했던 러시아의 쿠투조프 장군의 전략은 바로 ‘버티기’였다. 즉, 쿠투조프는 전투에서 승산이 없자 겨울이 올 때까지 버텼다. 겨울이 되자 나폴레옹 군대는 추운 러시아 내륙에 고립돼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전략은 독일 나치와 전투를 벌였던 2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대로 사용됐다. 이는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인처럼 버티는 힘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인들의 이런 성향은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보유한 러시아는 많은 전쟁을 치렀다. 유럽·몽골·터키·중국 등 그 상대는 다양했다. 현재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긴장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한국 역사도 이와 많이 비슷했던 것 같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국인들도 많은 전쟁에 휘말렸다. 하지만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러시아가 직접 전장에서 맞선 적은 없다. 어찌보면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전쟁에 너무 바빠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한국과 러시아는 항상 먼 이웃과 같은 존재였다.

이 때문에 양국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얼마든지 양국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 우선 민간 차원의 교류 확대가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류가 아시아를 휩쓸 듯 러시아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러시아의 전통 예술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기 바란다. 조만간 러시아가 가깝지만 먼 나라가 아닌 말 그대로 ‘이웃나라’로 거듭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HK연구교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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