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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언제까지 미루기만 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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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창무
중앙대 교수·산업보안학과

테러는 무서운 범죄다. 잡혀서 처벌받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다. 이른바 확신범죄다. 자신의 목숨마저 무기로 사용하는 극단적 성격을 갖기도 한다. 당연히 처벌의 억제효과가 클 수 없다. 강도·절도 등 일반 범죄와는 차원이 다르고 대책도 다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테러에 관한 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의 존재 때문이다. 북한의 테러 위협에 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반면에 세계적 테러조직의 위협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왔다. 그러나 교통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지금은 지구 어느 곳도 테러 위협에서 안전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강 건너 불로 여겨왔던 이슬람 급진세력의 테러 위협이 코앞까지 번져오는 조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슬람국가(IS)’에 참여하겠다며 수천㎞ 떨어진 곳까지 직접 찾아가는 현실이다. ‘외로운 늑대’라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도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테러소식에 무감할 수 있었던 데는 적어도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젊은이가 터키를 통해 위험한 시리아로 직접 들어갔고 며칠 전에는 IS에 가담한 호주 출신의 18세 청소년이 이라크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서방 출신 조직원 중 일부가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와 테러를 저지르는 ‘귀국 테러’라는 신종 용어마저 생겨났다. 올해 1월 프랑스 파리에서 풍자전문 잡지사 건물에 진입해 직원과 경찰 등 12명을 사살한 쿠아치 형제는 지난해 여름 시리아에서 귀국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현재 IS에 동조해 이라크와 시리아로 들어간 외국인이 2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언제 이들 중 일부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테러를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외로운 늑대’와는 별개로 말이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그동안 가만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바로 ‘애국법’을 제정하는 등 발 빠르게 테러에 대처했다. 테러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 목숨을 위협하는 현실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은 물론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은 테러방지법을 제정했거나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1월 28일 테러방지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그 이후 계속 본회의 상정조차 못한 채 발의만 거듭하고 있다. 현재도 테러방지법은 국회에 발의돼 있는 상태다.

 최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여당이 테러방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테러방지법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테러를 막아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되는 까닭은 인권침해 우려 때문이다. 야당과 인권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다. 테러방지법이 자칫 수사 및 정보기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민간인 사찰 등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또 현행 형법과 국가보안법으로도 충분히 테러에 대한 처벌과 대처가 가능하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테러방지법 논의가 4월 재·보궐 선거의 또 다른 이슈로 부각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과 우리 국민의 연계가 현실이 된 만큼 달라진 실정에 맞게 법제도도 바꾸는 것이 순리다.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면 만들어야 할 것이고 현재 규정이 실정에 맞지 않는다면 바꿔야 할 것이다. 미국·영국 등 다른 국가의 입법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안 제정은 먼저 국민의 공감대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한다. 아무리 법 취지가 옳다고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킬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실적으로도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야당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법안 통과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야권에서 법안 심의마저 거부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제일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국민의 안전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법안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심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리한 수사 및 지나친 재량권 부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 이른바 ‘독소조항’을 걸러내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한다면 테러방지법은 국민의 공감을 얻고 통과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제는 항상 디테일에 숨어 있다. 합의안이 쉽게 만들어지리라 보지는 않는다. 법안 자구 하나하나마다 갑론을박을 거듭하다 보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논의하고 검토해야 한다.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창무 중앙대 교수·산업보안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