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바다는 밤에 눈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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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과 하늘이 맞닿은 동쪽바다 아득히 멀리 어화(漁火)가 휘영청 피어오른다. 어둠이 짙어 갈수록 화사함을 더하는 고깃배의 집어등 불빛. 물 위에서 너울대는 불빛의 정취를 못 이겨 '어화둥둥'이란 감탄사가 생겼나.

만물이 잠들어 갈 시간, 바다는 오히려 희망을 건져 올리는 삶터가 된다.

"눈물(雪水)이 내려가 수온이 낮아지면 고기가 많이 올라오지요. 그래서 칼바람을 맞으며 바다로 나갑니다. 한참 때는 수평선을 가득 채운 고깃배의 어화가 대낮처럼 밤바다를 밝혔어요. 요즘은 오징어.대구.물가자미가 조금씩 올라오지만 큰 재미는 못 봅니다." 10년 세월 넘도록 남애항에서 새벽 경매로 생업을 꾸려온 중매인의 입담인지라 거침이 없다.

"저기 방파제로 이어진 섬이 양야도입니다. 조선시대엔 봉수대가 있었지요. 소나무를 비집고 떠오르는 해를 찍으러 사진작가들이 심심찮게 찾아옵니다. 예전엔 달력에도 걸렸었죠. 아마 동해안에서 이만큼 아름다운 항구는 없을 겁니다."

밤새 그물 걷어올린 배들이 파도를 가르며 항구로 들어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배를 따르는 갈매기 떼도 덩달아 바빠진다. 공판장에 고기를 부려놓는 어부들의 거친 숨소리, 펄떡펄떡 뛰어오르는 고기들, 중매인을 불러 모으는 중계인의 호루라기 소리, 항구의 새벽은 이렇게 살아 뛰며 시작한다.

조그만 항구지만 사진의 소재가 다양하다. 두 등대 사이로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 항구를 뒤덮은 갈매기 떼, 바다를 가르며 달려오는 고깃배, 생동감 넘치는 새벽 항구, 밤바다에 피어오르는 파도와 어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다.

Canon EOS-1Ds MarkII 16-35mm f8.0 12분 iso 5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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