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신망·조직력 갖춘 군인 없다" … 청년 장교 자극한 미 상원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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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사상계’ 1월호(사진)는 미국 상원외교위원회에 보고된 한국 정세 분석을 번역해 실었다. 보고 시점은 이승만 정권 말기인 59년 11월. ‘콜론 보고서’로 명명된 정세 분석엔 한국의 민주주의와 군부 거사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53년에 발간해 67년 폐간된 사상계는 지식층에 큰 영향을 미친 월간 잡지였다. 5·16 뒤 김종필 정보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혁명계획을 구상하는 데 신문과 사상계를 참조했다”고 말했다.

 콜론 보고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일반적으로 군사혁명의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론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담았다. 다음은 요지.

 “넓은 의미에서 한국도 다른 나라의 예대로 군사지배가 정당을 대체하는 그런 사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정당하다. 그러나 당분간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한국에는 커다란 정치적 신망이나 조직력을 가진 군인은 없다. 육군에 야심가는 많이 있으나 지금까지 육군은 정부의 주인이 아니라 그 도구에 불과했다. 정적이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은 실각당했고 강력한 독립성을 가진 지휘관은 냉대받았다. 정당정부가 완전히 실패하면 군부지배가 출현할 가능성은 확실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런 일은 생각할 수 없다.”

 보고서는 이승만 정권과 청년 장교들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자극했다. 콜론 보고서의 한국 부분을 집필한 사람은 로버트 스칼라피노(1919~2011)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다.

이승만 대통령은 백낙준 교수를 불러 “왜 스칼라피노 교수를 만나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다. 청년 장교들은 쿠데타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일으킬 군인이 없다는 지적에 술렁댔다. 5·16 주체세력이 63년 펴낸 『한국군사혁명사』는 “(콜론 보고서로) 항간에는 ‘군인 바보론’이 공공연히 유포돼 얼굴을 붉게 했다. 국제정세 추이에선 괄목할 만한 쿠데타가 잇따라 히트를 치는 판에 한국군은 민족성이 약하고 인물이 없어 그것도 못한다고 혹평했다”고 썼다.

 5·16에 가담했던 김윤근 해군 준장은 회고록에서 “콜론 보고서가 한국군을 우습게 봤다고 분개하는 장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소장파 장교들이 궐기에 나서는 데 이 보고서가 촉진제 역할을 했다. 단기간 내 쿠데타 가능성이 없다는 예측이 군심을 자극해 거사를 일으킨 역설이다.

 이후 스칼라피노 교수는 5·16을 예견한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정작 자신은 2008년 회고록에서 “한국에서 군부세력이 주도권을 잡을 줄은 예상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62년 1월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을 처음 만났다. 그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첫인상을 회고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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