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용어혼란 불편하고 교육등 지장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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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제경쟁력 강화를 통한 선진공업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다각적인 첨단과학기술의 확보및 개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용어」는 오히려 날로 무질서해지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등 뒷걸음질을 계속하고 있어 이의 조속한 정비와 체계화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모든 용어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과학기술용어는 특히 보편적 통일성이 요구되는데 이들 용어가 대부분 미국·일본·유럽등 선진국에서 생성돼 우리말로의 토착화가 용이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생긴다.
관계전문가들은 『현재 과학기술용어의 혼란은 극도에 달한 상태이며 이러한 무질서가 아무런 시정없이 지속될 경우 단순한 일시적 불편에 그치지않고 앞으로의 과학기술교육및 발전에 큰 장애요소가 될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장 심각한 상황에 놓인 분야는 최근 하루가 다르게 대중화되고 있는 컴퓨터쪽이다.
우선 「컴퓨터」 란 말자체부터 컴퓨터·콤퓨터·콤퓨타·컴퓨우터, 심지어는 콤푸타에 이르기까지 표기상의 통일조차 되어있지않다.
반도체인 램(RAM)의 경우 원어를 그냥 표기한 「랜덤억세스 메모리」와「순시호출 메모리」 ,또는 「수정가능 기억소자」등 전문가들이 임의로 번역한 용어가 혼용되고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정부가 공인한 삼성·금성등 5개 교육용 컴퓨터 생산회사에서 발행한 컴퓨터교본에서 뽑은 23개의 컴퓨터용어중 일치하는 용어표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만 봐도 용어상의 혼란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심지어 현행 인문계 고교용.「기술」 교과서와 상고의 「전자계산일반」 교과서의 경우 CRT모니터를 한쪽은 「음극선관표시장치」, 다른 한쪽은 「디스플레이장치」로 표기하는등 25개용어가 서로 다른 표기를 채택하고있다.
이같은 혼용및 오용 현상은 컴퓨터분야뿐 아니라 유전공학등 첨단분야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유전공학에서 「모노클로널앤티보디」 는 그자체로 쓰이기도 하지만 「단일항체」 혹은 「단선항체」「단선포군항체」 등으로 갈려 쓰이고 있으며 태양계의 전체를 뜻하는 의미로 오래전에 굳어진「행성」도 TV영화제목에서는 아직도 일본식용어인 「행성」으로 버젓이 오용되고 있다.
이같은 용어의 무질서에 대해 성기수박사 (KAlST전산개발센터소장) 는『현실적으로 외래어를 쓸수밖에 없을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용어통일작업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그 분야의 기술개발과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용어의 통일작업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72년 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용어 제정사업을 하기로 의결하고 부터다.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는 24명으로 구성된 용어제정심의위원회를 운영. 53개분야 13만9천단어를 수록한 「과학기술용어1집」을 75년에 내놓았다.
이어 77년에는 수정증보판을 내놓았고, 78년에는 13만3천단어의 의학용어집도 발간했다.
그러나 이 두 용어집에 수록된 용어중 90%이상이 원어를 단순히 한글로 표기하거나 직역한것에 지나지않아 실제로는 용어의 참뜻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우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의 수정판이나 증보판조차 나오지않아 기술개발의 속도를 용어집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때문에 각 분야에서는 스스로 단편적인 용어집을 만들어 쓸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용어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있다.
9년전 과학기술용어작업에 참여했던 권영대박사 (한국에너지연구소 상임고문) 는 『새로운 용어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이를 신속히 분석하고 쉽게 풀어서 널리 보급하는 노력이 빨리 실현돼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한국과총의 이강모사무총강은 『새로운 과학기술용어집을 발간하려면 최소한 8천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과학기술용어의 통일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기때문에 과학기술분야의 일방적인 제정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가 힘들다.
한글학자인 한갑수박사는 『과학기술용어도 언어인이상 문교부와 과기처가 이를 관장해서국문학자와 관계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전제하고 『그 혼용의 비중으로 보아 시급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에 많은 신규용어가 뚜렷한 개념 설정도 없이 마구 쓰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힘들고 나아가 교과서에 새로운 용어가 삽입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용어선정이 급선무』 라는 일선교사 송재숙씨(서울강일중과학담당)의 말처럼 과학기술용어공해로부터 탈피해 올바른 과학기술교육과 첨단기술발전을 위해서는 관계부처의 조속한 용어정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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