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펀드 1호, 2호, 3호 … '시리즈'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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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대표 펀드에만 돈이 몰리는 펀드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나 펀드를 파는 은행.증권사 등이 얼굴 상품을 적극 홍보.지원하면서 수익률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명 펀드와 같은 이름과 운용방식을 가진 채 1호, 2호 등 일련 번호만 바꾼 '시리즈 펀드'도 늘고 있다.

◆잘 나가는 펀드에 돈 몰린다=국내 최대 주식형 펀드인 '미래에셋 3억만들기 솔로몬주식1'은 29일 현재 설정액이 7999억원으로 지난해 말 824억원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29일 현재 공모 주식형펀드 전체 설정액(17조518억원)의 5%에 가깝다. 올 들어 펀드에 들어온 투자 자금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각 회사의 대표 펀드로 몰리고 있다.

한국펀드평가가 230개 공모 주식형(성장형) 펀드를 조사한 결과 설정액 기준 상위 10대 펀드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20.4%에서 29일 현재 33.2%까지 올랐다. 범위를 설정액 3000억원 이상인 펀드(19개)로 넓히면 이 비중은 같은 기간에 36.4%에서 50.6%로 높아진다. 올 들어 주식형 펀드에 몰려든 돈의 절반은 전체 펀드의 8% 남짓한 19개 펀드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새롭게 '대표 주자'를 키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7월 4일 판매한 국민은행의 '광개토 주식' 펀드는 29일 현재 5080억원이 몰렸다. 우리금융지주도 17일부터 은행.증권 등 전 계열사가 나서 '우리 코리아 블루오션 주식펀드'를 팔아 28일까지 425억원이 모였다.

◆이름 같은 시리즈 펀드도 급증=대표 펀드에 돈이 몰리면서 '펀드 나누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돈이 몰려 자산이 너무 커지면 살 수 있는 종목에 제한도 많아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5000억원이 넘는 펀드가 중소형주를 사면 주가가 당장 출렁이게 된다"며 "결국 우량 대형주로만 굴려야 해 발빠른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같은 이름을 쓰고 운용방식도 유사하지만 이름 뒤에 일련번호만 붙인 '시리즈 펀드'가 크게 늘고 있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1775개의 주식형 펀드 중 시리즈 펀드는 약 860개(48%)에 달한다.

시리즈 펀드는 대개 인기를 끈 펀드 이름의 후광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이름의 펀드는 등록 절차도 간단하고 별다른 마케팅 비용 없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로인 이재순 조사분석팀장은 "과거 실적이 미래의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며 "이름보다는 가치.성장.배당형 등 어떤 스타일의 투자를 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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