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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개회식장 짓는 데 1억 달러 … IOC와 교섭, 가설 건물로 대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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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D- 1063. 3수(修) 끝에 유치한 평창 겨울올림픽 대회(2018년 2월 9~25일) 개막이 1063일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회 반납 결의, 분산 개최 논란 등으로 삐걱대다 지난 8일에야 18개 종목의 개최지가 확정됐지만 여전히 분산 개최 주장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경기장 신축, 마케팅, 홍보, 올림픽 연계 관광 활성화 대책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내년엔 실제 올림픽처럼 모의 경기를 해보는 테스트 이벤트도 치러야 한다.

 스포츠계의 거목 김운용(83)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찾아 평창 올림픽 성공의 길을 물었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 올림픽(1988년) 유치와 성공의 산증인이다. 태권도를 국기(國技)로 육성하고 세계화를 추진, 올림픽 종목에 채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IOC 부위원장을 두 차례 지냈다. 그는 “늦긴 했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분산 개최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며 “겨울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스케이팅을 서울에 유치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서울은 빙상경기장·방송시설·교통망 등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대회가 가능하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오게 하고 올림픽 붐을 일으키려면 강원도와 지방정부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있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IOC와 평창은 이미 한배를 탄 운명이다. IOC와 긴밀하게 교섭해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IOC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오후 그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은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한 동숭동 서울대에 매일 찾아갔다. 사전을 보고 외워 간 문장으로 미군 보초들과 대화를 나눴다. 미군들은 꼬마가 영어로 얘기하니까 신기해했고 나도 영어 회화가 되는 것 같아 신이 났다”고 영어를 배우던 일을 회고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IOC가 걱정하는 건 뭔가.

 “공개적으로 얘기하진 않지만 내가 만난 IOC 위원들은 이대로 가면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한다. IOC가 지적하는 건 세 가지다. 경기장 건설이 굉장히 늦어지고 있고 약속한 걸 안 하고 있다는 거다. 대회 조직위는 있는데 책임지고 일할 실무책임자, CEO가 없다는 지적도 한다. 무엇보다 IOC가 제일 걱정하는 건 경기를 운영할 실무요원들을 선발해 훈련을 시키면서 경기 운영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경기 운영 요원이 없다는 점이다.”

 - CEO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대회 조직위원회가 잘 안 돌아간다는 거다. 서울 올림픽 때는 거국적으로 인재들이 모여 24시간 전념했다. 국제연맹과 IOC와 매일 전화하면서 협조와 도움을 받고 외국에서 사람들을 오게 해서 기술적인 걸 배워 가면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했다. 조직위에 24시간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 배치돼야 하고 헌신적으로 훈련받으면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는 거다.”

 - 조직위원장 교체(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구속으로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졌다. 24시간을 조직위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데 (조 회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 IOC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나.

 “예를 들어 도쿄(2020년 여름올림픽 예정)는 신청 서류엔 2개의 경기장을 새로 짓겠다고 했는데 IOC와 협상해 기존 시설을 그냥 쓰는 걸로 해 10억 달러를 절약했다. 우리도 계획을 잘 세우고 IOC와 교섭을 잘하면 절약할 수 있다. 개회식장을 새로 짓는 데 1억 달러가 든다고 하는데 IOC는 지으라고 한 적이 없다. 야외에 가설 시트(건물)를 만들어서 해도 된다. 나가노·인스브루크·릴레함메르가 그렇게 했다. IOC와 교섭을 잘하면 되는데 그런 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고(故) 사마란치 IOC위원장(오른쪽) 내외와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내외. 사마란치 위원장이 11살 위였지만 서로 형제로 부를 정도로 가까웠다.

 - 막대한 시설 투자에 드는 재원 마련, 경기장의 사후 활용 문제 등 벌써부터 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적 올림픽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앙정부가 복지기금·국방비 등 쓸 게 많은데 어떻게 몇 천억원, 몇 조원씩 (평창에) 돈을 대나. 또 아시안게임 세 번, 유니버시아드 세 번, 조정대회에 사격·F1대회까지 지방정부가 무분별하게 유치하는 대회마다 기업이 (비용을) 대줄 수도 없다. 그럼 마케팅을 해야 한다. 아이스하키와 피겨스케이팅이 사람을 가장 많이 끄는 종목인데 강릉에서 경기를 열면 관광객이 오겠나.”

 - 어떤 방법이 있을까.

 “국내 분산 개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시설·방송 인프라가 돼 있는 서울에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하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오고 붐이 일어나고 마케팅이 된다. 지방의 이해관계 때문에 붙들고 안 놓겠다고 해선 안 된다. 시간이 없다지만 잘 교섭하면 IOC도 동의할 것이다.”

 - 남북 관계가 꽉 막혀 있다. 북한과의 분산 개최 논의를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통신·비즈니스·출입국·숙소·안전·수송·방송위성 등 실무적으로 북한이 나라를 열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포츠 교류를 통해 대화의 물꼬 트는 건 정치적으론 아주 좋다. 정부가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좋은 아이디어라고 본다. 하려면 먼저 IOC와 충분히 교섭해서 IOC가 오케이해야 한다.”

 평창 올림픽과 김 전 위원장의 인연은 기묘하다. 겨울올림픽 유치 아이디어를 내고 유치전을 벌이다 대회 유치에 실패하는 바람에 IOC 부위원장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평창 올림픽 유치 방해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첫 번째 유치전이 벌어졌던 2003년 정치권은 “김 전 위원장이 IOC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 유치에 소극적이었으며 결국 경쟁지이던 밴쿠버로 돌아가게 됐다”며 그에게 유치 실패의 책임을 돌렸다. 2005년엔 세계태권도연맹 등 체육단체의 수장으로 재직하면서 단체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그는 결국 모든 스포츠단체의 직함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 방해 논란의 진상은 뭔가.

 “내가 부위원장을 또 하려고 평창 유치를 방해 놨다고 했는데 말이 안 된다. 자기들이 실패한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씌웠다. 오죽하면 유엔 인권위원회 조사보고서에서 나를 ‘평창 유치 실패에 대한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했겠나.”

 - 부위원장 출마가 평창 유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아닌가.

 “당시 서울에선 평창이 당연히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밴쿠버와 평창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이 나한테 ‘아무리 하려고 해도 밴쿠버에 안 된다. 그러니 이번에 3등 말고 좋은 2등만 해라. 제1부위원장 달고 4년 후에 다시 추진하면 틀림없이 될 테니까 그렇게 전략을 짜라’고 조언했다. 밴쿠버에 3표 차로 떨어진 건 그나마 내가 뛰어서 표가 많이 나온 거였다.”

 - 2007년 소치에 패했을 땐 유치 활동을 안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모두 표결이 이뤄진 과테말라로 갔다. 난 게이오대 방문 교수로 있었는데 사마란치가 전화를 걸어 ‘올 것이냐’고 묻더라.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까 ‘이번에 안 되면 또 뒤집어씌울 텐테 오지 말라’고 하더라. 청와대로부터 ‘오시지는 말고 전화·팩스로 운동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 공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잘못이 있었다는 것 아닌가.

 “비서 4명의 7년간 봉급, 7년 치 신문대금, 팩스 사용료, 식대들이 세계태권도연맹에서 나와 이게 횡령이라고 나를 기소했다. 나 때문에 평창 유치가 안 됐다고 그물을 쳐놓고 그걸 정당화하려 한 것이다. 재판 중이던 2005년 5월, 눈 수술을 해 세브란스병원에 나와 있었는데 김정길 체육회장이 찾아와 IOC 부위원장 사표를 쓰라고 하더라. ‘구금 상태에서 쓰는 건 국가 체면을 구기는 일이니 가석방 후에 쓰겠다’고 했지만 안 된다고 해서 5월 9일 자로 사표를 써줬다.”

 “그때 사표 쓴 일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안 냈다가 더 붙잡아 놓으면 어떡하라고…”라며 고개를 저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평생 스포츠 외교에 몸담았던 김 전 위원장은 “서울 올림픽을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국민 의식 개혁을 이룬 계기가 됐고 여기에 평창 겨울올림픽까지 성공시키면 진짜 문화 대국, 문화 국민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 BOX] 건투하라는 뜻의 ‘건두(健斗)’ 사인 쓰는 사연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꼽는 인생의 멘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군 비서실 재직 때 박정희 당시 소장이 1군 참모장으로 부임해 그의 부관이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5·16 이후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의전비서관을 맡아 영어 통역을 하기도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인격적으로 고매하고 구성원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분이었다”고 박 전 대통령을 기억했다.

 “당시 군의 장군들 중엔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가서 이기붕 같은 실력자들에게 아부하는 장군이 많았지만 박정희 장군은 달랐다. 소장들하고 같이 소주 먹고 멘토 노릇 했다.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을 챙겼다. …4·19가 일어나자 박 장군이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이 됐는데 ‘박 사령관이 데모대하고 같이 만세삼창을 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어 “지금도 생생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강직함을 보여주는 일화를 들려줬다. 계속되는 그의 회고.

 “4·19 직후 송요찬 참모총장의 인기가 대단했다. 송 총장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국민이 원하는 건 대통령 하야’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이 대통령 하야 후 박 장군이 직속 상관인 송 총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4·19를 수습했다고 해서 영웅 기분으로 계신데 나날이 인기가 내려갈 겁니다. 3·15 부정선거 때 총책임자로 계셨잖습니까. 빨리 그만두십시오’라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송 총장이 노발대발했다.”

 김 전 위원장의 눈길이 벽에 걸린 한 장의 낡은 흑백사진에 멈췄다. 박정희 의장 비서관 시절 미 합참 콜린즈 대장의 통역을 하는 장면(사진)이다. 박 전 대통령을 가리키며 “참 인정이 많은 분이었다”고 되뇌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지난해 출판한 책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중앙북스)에 자필 사인을 해 기자에게 건넸다. 첫 장에 축(祝) 건두(健斗)라고 쓴 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박 대통령이 격려금을 줄 때 건투하라는 의미로 겉봉에 ‘健斗’라고 써주곤 했는데 나도 그걸 따라 쓰고 있다”고 했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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