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스 "달러 파는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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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국제 금융시장의 '큰 손'이자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72.사진)가 달러화 매도 대열에 가담했다고 털어놓아 앞으로 달러값의 향배가 주목된다.

그는 20일 미국의 경제뉴스 유선TV 채널인 CNBC에 출연,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의 말을 듣고 얼마 전부터 달러화를 팔기 시작했으며 대신 유로화와 호주 달러.캐나다 달러.뉴질랜드 달러와 금을 사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소로스는 그러나 "스노 장관이 8년 동안 계속된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스노 장관은 지난주 초 "약한 달러가 미국 기업들의 수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데 이어 주말에 열린 선진7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선 "최근의 달러화 하락세는 완만하다"고 언급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소로스는 이에 대해 "미국이 환율정책을 바꾸면 유럽지역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했다. 유로화 가치가 더 오르면 회복기에 접어든 유럽의 수출이 타격을 받아 결국 세계경제 전체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달러화는 20일에도 미국 내 추가 테러 가능성이 큰 데다 캐나다의 광우병 발병 소식까지 겹쳐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날 달러환율은 유로당 1.17달러선을 넘어서 유로화가 출범 당시 시세를 회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환율정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엔 변화가 없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여전히 강한 달러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도 볼프강 클레멘트 독일 경제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부시 행정부가 약한 달러 정책을 추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과 투자자들은 미국이 3년째 지속되고 있는 경기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러 약세를 통한 수출증가를 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1일자 사설에서 유럽연합이 달러 약세를 방관할 경우 유럽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실적악화로 이어질 것이며 동시에 독일을 중심으로 디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이후 최근까지 유로화에 대한 미 달러화 가치는 26%나 떨어졌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도 부시 행정부의 달러화 약세 정책이 기본적으로 미국의 보호주의적 성장정책에 입각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성장은 해외 투자자본의 유입에 달려 있는데, 당장의 수출 증가에 매달리다 보면 소탐대실(小貪大失)할 수 있다는 충고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묵인 아래 달러의 하락세가 이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외국인들의 투자자금 회수에 따른 주식 및 채권시장의 혼란은 미국 정부가 노리는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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