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치」풀린 「풍전등화」레바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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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이건의 실책>파병 주장했던 슐츠에 화살
「레이건」행정부는 16일 집권이래 최대의 외교적 실패에 직면했다.
이날「레이건」미 대통령은 지난 1주일동안 그의 참모들이 검토, 수정해온 미 해병대의 함상 철수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 동시에 그의 레바논 정책에 주인공으로 행세해온 「제마옐」레바논 대통령은 미국 측의 만류를 무릅쓰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시한 이른바 8개항 제의를 수락했다.
미 6함대의 거대한 함포로 보호·육성하겠다던 레바논 정부군은 회교파 군대에 패주를 거듭하면서 미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이제 자기들이 비호해온 세력으로부터도 배척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변하고있는 레바논 사태에 「방관자」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미국의 레바논 정책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는 움직임도 두 갈래다. 하나는 미국이 후견해온 「제마옐」정부군이 패주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미국정책에 반대해온 시리아 영향력하의 회교파 세력과 시리아군 쪽으로 현지의 세력 균형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안이건,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시한 평화안이건 시리아의 양해 없이는 조금도 진전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패주하는 군대가 협상테이블에서 압력요소로 이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8개항을 「제마옐」대통령이 수락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 8개항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레바논 정부가 지난5월 이스라엘과 체결한 이스라엘군의 철수조 건 합의서를 폐기해야 된다는 조항이다.
이 8개항을 관계국들이 받아들일 경우 미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인 이스라엘의 이익이 크게 침해받게 되고 8개항이 거부될 경우 역시 미국이 후원해온「제마옐」정권이 붕괴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미국의 이익과 직결된 두가지 방향의 사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동안 미국은 6함대와 1천6백명의 해병대를 현지에 두고도 속수무책의 방관자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지에 배치된 6만명의 시리아군은 베이루트 작전에 참여하지도 않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레바논에서의 실패가 군사력의 무능이 아니고 「레이건」행정부의 외교적 무지와 목적의식이 분명치 않은 정책 때문이라는 비난이 언론에서 제기되고있다.
행정부 고위층에서도 실패의 책임을 따지는 격렬한 논쟁이 주로 국무성과 국방성 사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비난의 초점은 국방성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의 레바논 진주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슐츠」국무장관에게 쏠리고 있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레바논 속사정>정부군은 사실상 "뇌사상태"
미국과 이스라엘의 보호아래 명목상의 불안한 정권을 유지하고 있던 「제마옐」대통령 정부가 레바논 회교 민병대의 군사적·외교적 압력에 굴복,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있다.
「제마옐」대통령이 16일 수락한 사우디아라비아의 8개항 평화안은 레바논내 모든 외국군의 동시철수를 규정한 작년 5월17일의 레바논-이스라엘 평화협정의 폐기뿐만 아니라 회교시아파·드루즈파·수니파 등 모든 레바논내 분파세력에 새로운 권력분배를 보장하는 국내정치개혁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곧 이스라엘과 미국이 82년 6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래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기독교파「제마옐」정부의 계속유지 및 시리아 및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게릴라 등 모든 의국군의 레바논으로부터의 완전철수 등의 정책목표를 무산시키는 것이다.
「제마옐」대통령은 미국주도하의 레바논 사태해결을 달성하기 위해 14일 △회교도의 의석수를 늘리고 △정부관리 임명에 종교적 차별을 철폐하고 △팔량헤 기독교 민범대를 포함한 모든 군사단체의 무장해제를 내용으로 하는 3개항의 타협안을 제시하는 등 여러 차례 회 교파와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모두 거절당했었다.
회교 드루즈파의 지도자「줌블라트」는 지난 2월초부터 시작된 회교 민병대의 군사공세가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이 같은「제마옐」대통령의 타협안을『시간을 벌기 위한 얄팍한 수단』 이라고 일축하면서「제마옐」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군사적 압력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 7일 서베이루트의 완전장악에 성공한 회교세력은 그 여세를 몰아 베이루트남부 국제공항에 주둔하고있던 미 해병대를 3면에서 포위공격, 결국 백악관으로부터 사실상의 굴복을 얻어내는데까지 성공했다.
「레이건」대통령이 16일 베이루트에 남아있던 1천2백여명의 미 해병대의 철수를 2∼3일 후에 시작, 한달 내에 함대에「재배치」한다는 계획을 최종 승인한 것이다.
「줌늘라프」(드루즈파) , 「나비·베리」(시아파)등 회교 세력지도자들의 목표는 현재 베이루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1천2백명) ,프랑스(1천4백명) ,이탈리아(1천3백명)등 서방 평화유지군을 모두 몰아내고「제마옐」정부를 퇴진시킨 다음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레바논정부 구성은 1932년 당시 기독교도들이 회교도 보다 많았던 인구상황을 바탕으로 기초했던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기독교파에서 나오고 내각 및 의회에서도 기독교파가 다수를 차지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현재의 인구분포는 3백50만 국민 중 회교도가 약2백만명으로 6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레바논 국내문제가 해결된다해도 근본적으로 국제적 이해가 엇갈려 있는 레바논사태가 쉽사리 해결될 전망은 어둡다.
사우디 아라비아안에 대한 「제마옐」대통령의 수락소식이 전해지자 평화협정의 당사자였던 이스라엘 정부는 묵과하지 않겠다며 레바논 남부에 주둔중인 이스라엘군을 지금까지의 방어 선 이었던 아왈리강 이북으로 움직이고 있다.
결국 현재의 레바논사태는 3만7천명의 정부군중 절반이상이 붕괴된 레바논정부가 과연 회교 민병대의 군사적 압력을 견뎌 내느냐와 시리아-스라엘간에 대결상태에 있는 현재의 레바논을 둘러싼 중동정세가 어떠한 힘의 질서로 재편성되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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