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일교포 2세의 "탈조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어느나라 어느사회에서나 세대교체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라든가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것이다. 짐작컨대 한국에서도 일제통치를 직접 체험한 늙은 세대와 활자를 통해서 그것을 지식으로 전수 받은 젊은 세대간에는 일본을 보는 눈이 아주 다를것이다.
그런데 재일교포의 경우 세대교체의 문제는 일반적인 가치관이 차이를 넘어서 보다 심각한 문체를 안고 있다고 본다.
지금 일본에는 67만명 이상의 교포들이 살고 있다. 해방 당시에는 2백만명을 초과하였는데 해방 직후 귀국의 기회를 놓치고 잔류하게 된 동포와 그 자손들이다.
그러나 해방이 된후 근40년이 경과하는 동안에 재일교포의 세대별 구성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세대별이란 그 출생지가 본국인가, 일본인가 하는 구별이다.
재일교포들의 출생지에 대한 최근 통계가 없기 때문에 1974년의 통계에 의한다면 당시 재일교포 총수 64만여명 중 일본에서 출생한 세대의 비율은 75.6%나 되었다.
그러나 한국 출생자라 하더라도 철부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온 층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조국과 고향을 잘 모르는 세대와 의식상으로 보아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일본출생세대의 비율은 80%를 넘을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들은 한 입으로 재일교포라 하지만 날이 가고 해가갈수록 세대별 구성은 크게 달라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조국과의 거리도 크게 달라지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 글 벽두에서 재일교포의 세대교체 문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서 보다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하는 말이다.
대체로 본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고향에서 자라난 제1세는 과거 식민지통치 하에서 비록 배운 것이 적고 소박하지만 조국과 민족에 대한 일체감이 강하고 또 자기고향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귀국할 기회가 있을때마다 비록 주마간산격이기는 하지만 지방을 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하고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 재일교포들의 정성어린 노력에 의하여 학교라든가 여러가지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는 사실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안 느낄수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당 일본에서 푼전을 모으기 위하여 어떻게 악전고투하고 있는가를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1세들의 비율이 날로 줄어들고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이들이 연령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아 중견층을 이루게 되었다.
비록 출신지는 경상남도다, 경상북도다, 제주도다, 전라남도다 등등으로 되어있지만 그 출생지는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거의 80%가 일본으로 되어있다.
그들은 자기조국과 고향에서의 구체적인 생활체험이 없고 따라서 자기조국과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제1세와 같을수는 없는것이다.
물론 재일교포들도 젊은 세대들이 조국과 소외되는 이러한 경향을 막기 위하여 그 나름대로 노력도 하고있고 민족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 교육내용은 불문에 붙이더라도 국민학교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적령아동이나 생도수가 14만명인데 그중 민족교육을 받고 있는수는 3만명 미만일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아가는 세대가 재일교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제1세나 민족교육을 어느정도 받은 교포는 극히 소수파에 속한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조국을 모르고 고향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속에서 비록 아직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자기부모나 조부모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을 찾고 자기 뿌리를 알기 위하여 조국을 방문한다든가 조국에 유학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불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꼭 가꾸어 가야할 좋은 싹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어떤 감상을 품고 일본으로 돌아오고 있는가. 항간에서 듣는 소식에 의한다면 많은 경우에 언어 문제가 걸리고 있는것같다.
즉 본국동포들은 일본에 살든 미국에 살든 한국사람은 당연히 한국말을 알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본국에 와서까지 일본말을 쓰는가하고 따지는 모양이다. 즉 모국어를 익히지 못한 탓으로 본국동포들로부터 차별 당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그순간 자기 뿌리를 되찾아 보자는 뜨거운 심정은 식어만 가고 일본에서 차별 받고 조국에서 소외당하는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가 서야할곳은 도대체 어딘 가하고 자문자답하게 된다고들 한다.
오늘 재일교포 젊은 세대들안에서는 「재일」을 어떻게 살것인가하는 문제가 절실하게 논의되고 있는것이다. 물론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는 정당하다. 특히 과거 일제통치하에서 일본말을 강요당한 쓰라린 경험을 돌이켜볼때 한국사람이 한국 땅에서 하필이면 일본말을 쓰는데 대하여 반발을 느끼는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들이 일본 땅에서 태어났다는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일까. 우리민족이 공동으로 그 쓰라림을 나누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아닐수없다. 그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숙명적으로 그러한 십자가를 걸머지고 차별과 편견이 유달리 심한 이사회 이 땅에서 갈팡질팡하고있는것이 현실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한국말을 몰라도 별로 지장이 없다. 그러한 한국말을 한국사람이니까 알아야하겠다는것은 상당히 높은 차원에서의 결심이라 하겠다. 그런 경우에 한국사회에서 한국말을 물과 공기와 같이 쓰게되는 것과는 달리 아주 의식적이고 끈질긴 고투가 요구된다.
나는 결코 그들이 자기 모국어를 익히지 못하고 있는것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모처럼 자기 뿌리를 되찾자는 그들의 뜨거운 염원이 만약에 말 문제 하나가지고 식어버린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하지 않을수없다.
앞으로 재일교포사회에서는 생활체험을 통하여 자기조국과 고향에 대하여 강한 애착심으로 맺어진 제1세가 완전히 없어지고 일본에서 태어난 세대가 1백%차지할 날이 그리 멀잖다. 그에 따라서 탈조국, 탈민족현상은 확대되어 갈것이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흐름을 막고 조국과의 정신적 유대를 깊게 해갈 것인가, 이 일본사회에서 민족적 입장을 떳떳하게 고수하면서 살아갈 수있게 할것인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수없다.
강재언▲1926년생▲53년 대판상과대학(현 대판시립대학)수료▲70년 경도대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81년 경도대에서 문학박사학위취득 ▲현재 대판시립대·관서대강사 ▲저서로는 『조선의 개화사상』(암파화점), 『조선근대사연구』(일본평론사), 『근대조선의 변혁사상』(일본평론사)등 다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