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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방한과 초파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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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 송광사에서 인적한 구산스님은 우리에게 열반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생사의 속박에 갇히지 않고 열반을 구체적으로 연출하였다. 특히 중국 헌봉선사 같은 분은 물구나무처럼 도화를 한일이 있었지만 근래 들어 좌탈입망의 경지를 보인 선사는 혜월과 한암·효봉, 그리고 구산스님이다. 그만큼 선사의 개오는 확실하였고 생사에 자재하였다. 그러나 그의 입적은 한국 선종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송광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16국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절이다. 보조로부터 시작된 정혜결사의 혜맥이 있는 도장인가 하면 삼보사찰 중 준보에 해당한 절이다. 바로 이곳에서 16국사가 한꺼번에 배출되었다. 원래 국사란 한나라의 사표를 의미한다. 이 제도는 일찌기 서역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중국에서는 배제의 천보1년(서기550년) 법상이란 스님이 제왕으로부터 강장국사라는 호를 받은 것이 그 효시가 되고있다.
사실 이와 같은 제도는 우리 나라에서 일찍부터 사용하였음을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다. 신라 문무왕 당시 국사의 칭호를 사용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때는 국사를 어디까지나 고승을 특별히 존칭하는데 불과하였고 직으로 제도화된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고려는 이러한 왕사와 국사의 제도를 두고부터 불교 발전을 도모한 것은 물론이고 국정에까지 참여케 하여 왕사와 국사들의 뛰어난 예지와 경륜을 자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조의 배불숭유정책이 시작되면서 없어지고 알았다. 그래서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국사전을 가 볼 때마다 역사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이제 그 화려한 역사는 행간에 묻히고 없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그때와 같은 수행승이 우리 주위에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도 그때와 달리 시대적 상황이 달라져 있고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있어 국교를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특정종교를 배려할 수도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국가지도급에 있는 분들이 공식행사에서 하느님만을 찾는 일이 마음 한구석에 걸릴 뿐이다. 그리고 올해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사랑과 정의의 사도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방문시기가 불가최대명절인 사월초파일에 겹쳐 혹시라도 불교도들에게 종교적위화감을 주는 일이 없을지 노파심 같은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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