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초임 한국이 월 81만원 많은데 부장은 147만원 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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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주형(46·가명)씨는 올해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승진한 뒤 처음 받은 월급은 530만원 남짓. 김씨는 “월급이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차장 때에 비해 월 20만원도 안 올랐다”고 말했다. 그가 17년 전 이 회사에 입사할 때 처음 받은 월급은 3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성과급까지 따지면 350만원 넘게 받은 것 같은데, 15년 동안 200만원 가량 더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애가 고교에 들어가고, 대학에 입학하면 돈 들어갈 일만 남았는데…. 그 뿐인가, 직급에 맞게 경조사나 소소한 일상까지 챙기면 신입 때보다 손에 쥐는 돈은 더 적은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반퇴시대를 준비하기엔 역부족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의 또 다른 폐해다. 연공급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직급간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 일본은 다르다. 직급이 오르면 임금이 확 뛴다. 근속연수 대신 역할의 책임과 성과, 생산성을 따져 임금을 주는 체계로 꾸준히 바꿔온 덕택이다. 중앙일보가 한국과 일본의 업종별, 기업별 임금구조를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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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자들의 임금 평균만 따지면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다. 한국 근로자가 월 315만4907원을 받는데, 일본은 319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업종별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교대상 13개 업종(5인 이상 상용근로자) 중 한국 근로자가 일본보다 높게 받는 업종은 전기가스, 도소매업, 숙박음식업, 금융업 등 4개 뿐이다. 특히 금융업은 한국 근로자가 월평균 523만4000원을 받는데 비해 일본은 461만3000원으로, 격차가 62만1000원에 달한다. 제조업 대비 한국의 금융업 종사자는 1.5배를 받고, 일본은 1.2배다. 한국의 전체 임금평균이 일본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금융업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은데 따른 착시효과라는 말이다. 숙박음식업은 두 나라에서 가장 낮은 급여를 받는 직종이었다. 단시간 근로자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일자리 간의 임금격차가 우리는 너무 크다”며 “반퇴시대에 고르게 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이런 지적은 같은 업종, 비슷한 규모를 가진 한·일 기업의 임금을 비교하면 더 확연해진다. 상용근로자가 2000명이 넘는 화학업종 대기업을 예로들면, 대졸 초임은 한국이 일본 근로자보다 월 81만원이나 많다. 그런데 부장급에선 월 147만원 적다. 대졸 초임과 부장 초임간 격차는 일본이 월 450만원 가량인데 비해 한국은 220만원에 불과하다. 직급이 오를 수록 한·일 기업 근로자의 임금격차가 커지는 현상은 모든 업종에서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나타난다. 이유가 뭘까. 임금체계 때문이다. 일본기업은 대체로 역할급을 운용하고 있다. 맡은 업무의 역할 무게와 책임, 성과,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주어진다. 직급이 올라도 역할이나 성과 대신 낮은 기본급을 기초로 단순히 근속연수에 따른 일률 인상이 이뤄지는 한국과 대비된다.

 주목할 점은 일본은 55세를 정점으로 임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졸 사무직을 기준으로 일본 근로자의 60세 임금 평균은 월 521만1460원이다. 55세(541만6570원)보다 20만원 이상 적어져 50세 때 받던 임금(518만원)과 비슷해진다.

 일본에는 일정 연령이 되면 10~20%씩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없다. 그런데도 55세 이후 임금이 하락하는 이유 또한 역할급을 채택하고 있어서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부장 직급을 내려놓는다. 차장이나 과장이 되기도 한다. 후배 부장 밑에서 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신 역할이 축소되는 만큼 임금이 줄어든다. 물론 생산성이나 성과를 부장 직위에 걸맞게 낸다면 임금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성균관대 조준모(경제학) 교수는 “일본의 임금체계는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더욱이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는 한국 기업과 근로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임금체계만 잘 정비해도 임금격차와 반퇴시대 대비, 기업경쟁력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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