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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유산과 우려되는 남·북·미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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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우리 사회에 미국의 대북정책을 두고 논란이 적지 않다. 우리의 대화노선과 미국의 대결노선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론 모두 남북대화와 한·미 공조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미국 조야의 대북인식이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매우 조심스러웠던 오바마 행정부다. 무모했던 부시 행정부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제 더 이상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대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붕괴시켜야 할 ‘악마’의 나라로 보고 있다.

 헤겔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류 역사는 개인의 행복을 희생시켜온 ‘살육제방’이라고. 헤겔의 눈에 이런 개인의 행복 희생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산국가들의 실상은 어떠한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권력을 위해 개인의 생존 자체를 희생시킨 살육제방이었다. 미국은 지금 북한을 이런 살육제방으로 보고 있다.

 미국 조야의 북한 비난이 예사롭지 않다. 올해 초 오바마 대통령이 포문을 열었다. ‘북한 정권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그래서 대북정책을 비핵화에 국한하지 않고 정보유입을 통한 정권교체로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케리 국무장관은 더욱 강경하다. 그는 북한을 나치 독일 정권 이래 세계에서 가장 인권탄압이 심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굶기거나 고문하고 투옥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민을 예속시키고 죽이는 사악한 곳’이라고 비난했다. 민간의 목소리 또한 강경하다. 대표적인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지난 연말 ‘북한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결 레토릭이 부활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인 레이건의 1983년 연설을. 미·소 관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몰고 간 연설이었다. 국제정치 학자들은 모두 놀랐다. 상대방 체제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 않는 냉전 게임의 암묵적인 룰을 레이건이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미·소 관계가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의 전면적인 선과 악의 대결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은 레이건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냉전 연구의 대가인 게디스 교수가 말했다. 레이건이야말로 어느 전문가보다도 공산체제의 몰락과정을 가장 잘 예견했다고. 그가 인용한 러멜 교수의 통계가 의미심장하다. 20세기에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약 3800만 명인데 반해 권력에 의해 살해된 사람은 1억 6900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중 61%는 공산정권에서 일어난 것이고, 38.5%는 여타 독재국가에서, 그리고 민주국가에서는 5%에 불과했다.

 정말 놀랄 만한 수치들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을 악마화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리퍼트 미국대사를 칼로 공격한 김기종을 두둔하는 북한을 보고 이런 흐름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대화보다는 북한을 악마화하는 미국과 공조하라는 압력을 정부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의 헤드릭 스미스 기자가 의미 있는 지적을 했다. “레이건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육체에 ‘대결의 레이건’과 ‘융화의 레이건’이 동거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지적처럼 레이건은 강경한 레토릭 뒤에서 악마와 대화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북한 외무상 이수용이 지난 3일 제네바에서 말했다. ‘미국에 선제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미국의 북한 악마화에 대항해 막장 대결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집권 3년차인 박근혜 대통령과 3년상을 끝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심상치 않은 남·북·미 삼각관계의 현실에 직면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융화의 레이건이 필요해 보인다. 박 대통령에게 3이란 숫자의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 측면도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분명 양자관계보다 3자 관계는 대화를 더 편하게 할 수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박근혜도 하나가 아니라 ‘원칙의 박근혜’와 ‘스마트의 박근혜’가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기대하고 있다. 한·미·중 삼각관계에서 보여주었던 ‘스마트의 박근혜’가 남·북·미 삼각관계에서도 부활하기를.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