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이 테러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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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11㎝ 자상, 팔 관통상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5일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의 공격을 받아 얼굴에 길이 11㎝ 자상과 왼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리퍼트 대사가 피습 직후 주변 사람의 팔을 잡고 있다. [사진 문화일보]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5일 범행 직후 경찰에 연행되면서 소리치고 있다. [뉴시스]

주한 미국대사가 동맹국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피습을 당했다. 조·미 수호통상조약(188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1953년 상호방위조약으로 동맹국이 됐다.

 마크 리퍼트(42) 주한 미 대사는 5일 오전 미 대사관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초청 강연을 앞두고 식사하던 중 25㎝ 과도를 쥔 김기종(55)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 대표의 공격을 받았다. 신촌세브란스 병원 의료진이 “1~2㎝ 차이를 두고 경동맥을 비껴갔다. 생명이 위독할 뻔했다”고 발표할 만큼 치명적인 테러였다. 리퍼트 대사는 수술을 받은 뒤 트위터에 “(한국민의) 관심과 성원에 감동했다”며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동맹에 대한 공격”이라며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병원에 입원 중인 리퍼트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몇 년 전 비슷한 경험을 한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된다”며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위로했다. 미국은 경악했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폭력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리퍼트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사와 부인 로빈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특명전권대사는 국가를 대표한다. 그래서 대사에 대한 공격은 그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특히 ‘외교 관계에 대한 빈 협약’(61년 채택)에선 대사의 안전을 파견된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건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청와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열었고, 이완구 총리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가장 시급한 건 이번 사건이 한·미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서울과 워싱턴의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미국 측에 사건 경위와 대책 등을 설명했다. 청와대는 NSC 회의 뒤 “이번 사건을 자행한 범인의 반미, 종북 행적 여부 및 활동에 대한 철저한 조사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은 추호의 흔들림이 없음을 재확인하고 미국과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미 동맹이 이번 사건으로 흔들리거나 손상될 만큼 허약한 관계가 아니라는 데 두 나라가 의견 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건의 성격상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 논란에서 보듯 한·미 관계가 심상찮은 시기인 만큼 미국 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수 있다. CNN 등 미 언론은 “반미주의자의 소행”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김씨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8차례 방북했다는 점에서 자칫 보수 대 진보의 남남 갈등으로 번질 소지도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극단적인 외세 배격 성향을 보여온 한 개인의 돌출행동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남남 갈등을 부추기거나 한국에서 반미 테러가 확산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주는 것은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6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추가 대책을 논의한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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