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view &] 요우커 1000만 시대, 단비와 재앙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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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정경민
경제부장

양력 설을 쇤 덕에 지난 설 연휴 제주도를 다녀왔다. 2008년 가보고 7년 만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은 옛날 그대로였지만 그 사이 달라진 것도 많았다. 동네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초콜릿 체험관은 생뚱맞게 느껴졌다. 제주도가 언제부터 초콜릿 천국이 됐는지 궁금했다. 섬 곳곳에 들어선 가지각색 박물관과 ‘**랜드’도 과거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무엇보다 어딜 가나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遊客)’와 마주친 건 낯선 경험이었다. 제주시 연동의 바오젠거리는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였다.

 문득 2009~2013년 뉴욕특파원 시절이 떠올랐다. 타임스스퀘어·월스트리트·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엔 어김없이 요우커로 북적댔다. 관광객만이 아니다. 뉴욕의 5개 구 가운데 퀸스는 중국인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코리아타운의 원조인 플러싱조차 차이나타운에 파묻혀버렸다. 맨해튼 남동쪽 차이나타운도 전방위로 영토를 넓혀 이젠 맨해튼 중부인 32가 코리아타운까지 넘보고 있다. 중국계 뉴욕시장이 나온들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밤낮이 거꾸로 뒤바뀐 뉴욕이 이 정도니 중국의 앞마당 한국이 중국 신드롬에 휩쓸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올해 한국을 찾을 요우커는 70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2018년쯤 1000만명이 넘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국내 인구의 5분의 1이다. 국내인은 전국에 흩어져 살지만 요우커는 관광지에 몰린다. 관광지 주변의 요우커 체감 인구밀도는 상상을 초월할 거란 얘기다. 당장은 요우커가 국내 경제에 단비가 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이 국내에서 쓴 카드금액이 사상 처음 100억달러를 넘었다. 1년 만에 무려 41.9%가 늘어난 115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큰손 요우커 덕분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직은 국내인이 해외에 나가 쓴 카드금액 122억달러엔 못 미치지만 이를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여행·유통업계가 요우커에 사활을 걸고 나선 건 당연하다. 한데 제주도 이곳 저곳을 돌아보면서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요우커 외 일본인은 물론이고 국내인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제주도 상인 입장에선 요우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한데 단체관광을 온 요우커 상당수는 ‘뜨내기’에 가까웠다.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가 잠깐 구경하고 썰물처럼 자리를 떴다.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가이드 대부분은 한국이나 제주도의 역사나 문화에 문외한인 무자격자가 태반이었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자니 관광상품이든 서비스든 하향 평준화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초가집 몇 채 지어놓고 제주도 민속촌이라며 조악한 돌하루방 모형을 파는 식이다. 뒤집어보면 어김없이 ‘Made in China’란 도장이 찍혀있다. 초콜릿 체험관에선 낯이 뜨거워졌다. 초콜릿 알갱이를 녹인 뒤 모형에 부어 모양을 만드는 10분짜리 체험이 20% 할인해 8000원이었다. 큰맘 먹고 멀리 중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와 하기엔 민망한 체험이었다.

그나마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선물가게가 늘다 보니 제주도민에게 떨어지는 관광수입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들렸다. 조랑말을 타고 오름을 돌아보는 반나절이나 하루짜리 코스를 찾는 건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였다.

 게다가 섬 곳곳은 개발 공사로 파헤쳐지고 있었다. 제주도가 5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제도를 도입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중국인의 ‘묻지마’ 땅 매입이 급증하면서 제주도엔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 해안도로 주변 땅값은 10배 오른 곳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쓸모 없던 한라산 중턱 돌밭조차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땅값 상승은 머지않아 임대료를 밀어 올린다. 임대료는 오르는데 돈 되는 관광객은 줄고 뜨내기 요우커만 넘친다면 제주도의 앞날은 어찌 될지 갑갑해졌다.

 중국과 이웃한 이상 요우커 쓰나미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한데 한바탕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 텅 빈 싸구려 선물가게와 얄팍한 상술만 남는다면 요우커는 단비가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경민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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