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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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밑이 가까우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잠시나마 지난 3백65일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맞는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때때로 그런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망망대해를 해쳐가는 배(선)로 치면 열심히달려가기는 하는데, 잊지 않고 나침반을 확인해야하는 것이다.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살고 있다는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후회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독단은 삶에 있어서도 시행착오를 빚어내며, 이것을 돌이키려면 얼마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열심히 산다는 것이 최선일수는 없는 것이다.
제야가 되면 모든 사람들은 비로소 나의 둥우리, 나의 자리를찾아 온다. 그런 브레이크(제동)장치조차 없는 삶은 그아말로 언덕길을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자동차와 다를바 없다. 파국에 이르렀을 때는 브레이크를 밟아도 이미 늦다.
천지의 운행에 일시가 매져져있는 것은 그런 브레이크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장치하는 의미도 있는것 같다. 3백65일 가운데 며칠만이라도,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나의 자리에 정좌해서 나를 뒤돌아보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장·자크·루소」가 그의『참회록』에 남겨놓은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이 살아갈 궁리만 할때는 고상한 생각을 하기란 어렵다.
「고상한 생각」이란 고상한 삶을 말한다. 고상한 삶은 향기로운 삶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늙는 것이 아니고 좋은 포도주처럼 향기로와지는 것이다』고.
사람에겐「인격」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향기로 느껴지고, 때로는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닦지 않으면 이루어질수 없다.
물론「고상한 人格」은 하루아침에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의 자기연마가 요구된다.
중국의 철인 왕양명은『사상마동』이라는 말을 했다. 앎(지)과 행동(행동)을 일치시키는, 실천철학을 통해 심성을 향상시킨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어느 경지 이후의 얘기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마치 장군이 도상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정신은 모든일의 위대한 지렛대다. 인간의 사색은 인간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해결을 얻는 과정이다. 오죽하면『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철학자가 있겠는가.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금년은 그 어느해 보다도 우리에게 더 많은 근심과 노고와 불안을 주었다. 그럴수록 우리는「나의 자리」 「나의 위치」를 다시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야의 종소리는 우리에게 그런 경종의 소리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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