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천문학적 무역적자 줄이려면 한국 기업 보고 배워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천문학적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한국인의 근검절약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1면 기사 일부와 10면 전면에 걸친 특집기사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신문은 "인구 4800만 명에 불과한 한국은 외화 보유액이 2070억 달러에 달하고 지난해 294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며 "반면 미국은 같은 해 6176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하고, 저축하며, 빌려주는 반면 미국은 수입하고, 소비하며, 빌리기만 한다"며 "세계는 조만간 미국을 더 이상 돈을 빌려주기에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고 여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한국과 미국 기업의 대조적인 모습을 집중 조명하면서 ▶빚으로 빚을 갚는 재정구조▶저축 기피▶사치스러운 생활문화 등이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무역적자의 주된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WP는 세계 1위의 헬멧 제조업체인 홍진 HJC 임직원들의 근검절약하는 모습과 홍진 HJC로부터 헬멧을 수입해 매년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미국 업체 헬멧 하우스 임직원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을 대비시켰다. 신문은 "두 회사의 대조적인 모습은 미국의 엄청난 무역수지 불균형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했다.

◆ 두 회사의 대조적 생활=헬멧 하우스의 밥 밀러(60) 사장은 수영장과 테니스장, 거품 목욕탕이 딸린 대저택에 산다. 주중엔 벤츠 S클래스 500, 주말엔 BMW X5를 번갈아 몬다. 부인도 재규어를 갖고 있다. 3대를 합치면 20만 달러가 넘는다. 게다가 취미용으로 79년형 페라리, 55년형 벤츠 걸윙 등 클래식카 5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오후 5시면 퇴근하고, 주말엔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부인과 17세 된 아들을 데리고 자주 국내나 해외의 명소를 여행한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엔 두세 달에 한 번씩 꼭 들른다. 수입의 대부분을 쇼핑센터 등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저축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반면 홍진 HJC의 홍완기(65) 회장은 서울의 한 중산층 아파트에서 산다. 회사 수입의 10%는 연구개발에 재투자한다. 장기휴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 번 돈은 최대한 재투자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휴가에 개인적으로 돈을 썼다면 결코 세계 1등 회사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홍진 HJC 직원들은 대부분 수입의 60%를 저축한다. 반면 헬멧 하우스 직원 125명 중 저축하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저축액도 수입의 10% 미만이다. 80%는 그날 벌어 그날 쓰는 상황이다. 대부분 퇴직연금조차 가입하지 않았다. 밀러 사장은 "직원 중 5만 달러를 벌 때나 10만 달러를 벌 때나 늘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다. 그게 그들의 사는 방법"이라 지적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