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범법자처벌·배상해야 한다|ICAO의 「KAL기사건 보고서」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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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제민간함공기구(ICAO)는 KAL기가 항로이탈을 했다거나 사고로 2백69명의 귀중한 인명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조사를 한것은아니다.
ICAO가 KAL기 사건을조사하게된 가장 근본적이고 주된 이유는 .비무장한 민간항공기를 무역으로 격추시켰기때문이며 이는 중대한 국제법위반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야만적인 무력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이에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KAL기가 간첩행위를 위해 항로를 이탈하였다고 주장하는 소련의 허위와 기만을 가려내고 그진상을 밝힐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번 발표된 ICAO 조사보고서는 KAL기가 소련공군기의 미사일에 의하여 격추되었다는 우리의 주장을 확고부동한 사실로 재확인했다. 또 KAL기가 간첩행위에 종사했다는 터무니없는 소련측의 허위추장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또 연료절약을위한 항로단축설등을 포함한 일에의 고의적인 항로이탈설도 아울러 근거없는것으로 부인했다. 이러한 결론은 당연한 귀결이며 공정한 조사의 결론으로 볼수있다.
그런데 ICAO보고서는 이상과 같은 실증주의에 입각한 결론에 반하여 가정과 상정이라는 전제하에 승무원의 실수와 부주의 가능성을 결론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했다. 이것은 증거와 과학적인 사실에만 입각하여 행해저야할 기술적성격의 ICAO 조사단이 취할태도나 논리는 아니다. 이미 죽은 승무원들은 그들에대한 근거없는 억울한 가정을 반박할길도 없고 변명할 도리도 없다.
승무원의 실수나 부주의를 상정할 조그마한 증거나 근거가없는 마당에 어떠한 추측이나 가정도 해서는 안되는것이 당연한 이치다. 부득이 가능한 여러가정과 상상을 해야한다면 가능한 일체의 것들을 다포함시켰어야할것이다.
조사보고서는 KAL기가 앵커리지를 떠날적에 기체나 자동항법장치를 비롯한 모든 기기가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륙후에도 모든 기기나 기체가 계속해 정상으로 작동하였다고 어떻게 말할수있겠는가. 그렇다면 기기이상의 가정도 응당 해보았어야할것이 아닌가. 며칠전에만해도 완전한 정비를 마치고 정상적인 기능을 확인한후 우주궤도에 진입한 미국 우주왕복선의 컴퓨터도원인모를 고장을 일으켜 지구귀환을 상당시간 늦추지 않을수없었으며 사실을 보지 않았는가.
KAL기의 자동항법장치의 컴퓨터가 .이륙전에 잘 정비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해도 그것이 이륙한후 어떤 전류의 변화나 기타 원인모를 내적 또는 외적요인에 의하여 이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누가보장할수 있는가. 컴퓨터의 갑작스런 이상은 그 예가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것은 논외로 하고 승무원의실수나 부주의만을 상정하는것은 분명히 과학적인 조사단이취할 자세가 아니다.
또 항공기의 기체나 기기에관해서도 완전히 정비되었더라도 이상이 생길수있다는것은 왜 상정하지 못하는가. 더나아가 소련이 자동항법장치를 교란시키는 비밀기술을 개발하였으리라고는 왜 상정못하는가. 인간의 상상력과 가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그렇다면 보고서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이런 끝없는 가정과 상정을 다 포함시켰어야할것이다. 지금까지 말한논리가 비과학적이라면 승무원의 실수와 부주의만을 상정하는것은 더욱 비과학이다
뿐만아니라 그것은 반론을 할수없는 죽은 승무원들에게 도덕적으로 불공평하다. 항로이탈의 원인은 블랙박스같은 증거물의 부재로 인하여 조사단으로서는 결론내릴수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하는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사단의 자세가아닌가 생각한다. 고의적 항로 이탈이 아닌이상 어떻게해서, 무슨원인으로 KAL기가 항로를 이탈했는가하는것은 중요한 문제가아니다.
항로를 잃은 KAL기가 민항기인줄 알면서 무력으로 격추한 소련의의 불법행위가 중대한 문제다. 더군다나 소련은 KAL기가 정보기였으므로 격추했다고 추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민항기인줄 알았으면 격추하지 않았을거라는 구차한 변명이 숨어있다. 그러나 무르만스크사건때는 대낮에 민간여객기인줄 확인하고 여객기안의 승객까지 목격하고서도 아무 예고없이 KAL기에 무공격을 가하지 않았는가.
그 공격에 대해서 소련은 뉘우침도 사과도 없었다. 2km지점에서 운항등을 켜고가는 KAL기를 보고 그들이 2시간이상 레이다로 추적한 비행기인줄 알면서, 더 이상 첩보기인지 민항기인지를 확인도 하지않고 쏘아놓고, 민항기인줄 알았다면 안쏘았을거라는 논리는서지 않는다.
10년전 이스라엘 공군기가 항로를 이탈한 리비아여객기를 격추하였을때 소련은 이것을 용납할수없는 고의적이고 야만적인 불행위라고 선두에 나서 규탄하지 않았던가. 항로를 이탈한 민간여객기를 국제법에 따라 안전하게 유도하여 항로로 복귀시키든지 최인접공항에 안착시키는것이 민간항공기요격의목적이며 사명이다.
민간항공기요격은 군용기요격과 달라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으로 격추시키는 일은 금지된다. 소련공군기는 KAL기를 요격할때 예컨대 조종사의 앞으로 나아가 운항등을 깜박거려 주의를 환기시키고 길잃은 나그네를 인도하듯이 안전하게 유도하려는 노력을 전혀하지않았다.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소련은 한마디로 말하여 다음과같은 삼중의 책임을 져야한다.
첫째, 민항기에 대한 무력공격과 그로 인해 발생한 인명손실에 대한 책임이다. 둘째, 불가항력에 의하여 항로를 이탈한 비무장국제민항기를 안전하게 유도하지 않은 책임이다. 세째, 상기 두 범법행위에서 발생하는 형사적및 민사적책임이다.
민항기에 대한 야만적인 무력행사로 인하여 초래된 2백69명의 인명손실은 살인행위라고 할수있다. 소련은 응당 관련자를 형사적으로 문책·처벌할 의무가 있다. 또한 전유가족과 대한민국에 사죄하고 민사적 책임에서 발생하는 적절한 보상을 할의무가 있는것이다. 이러한 형사적·민사적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궁색하게 첩보기로 몰았는데 이제 1CAO보고서에서도 KAL기의 간첩행위를 부인하였다.
이제 소련은 그들이 져야할책임의 자국이 시간의 흐름에따라 잊혀지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않는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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