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격증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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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판정사, 야채 소믈리에, 노인 간호용 요리사….

일본에서 요즘 각광받는 자격증들이다. 사람들의 취미.욕구가 다양해지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이름조차 생소한 자격증.인증 제도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구조조정의 칼날에 미래가 불안해진 월급쟁이와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젊은층이 너도나도 자격증을 따려고 몰려든다.

일본 내 자격증은 국가자격증 300여 종, 사단.재단법인의 공적자격증, 민간기관의 민간자격증을 합쳐 6000여 종이 넘는다. 내년부터는 경쟁률이 높았던 변호사.공인회계사 자격증 시험도 쉬워진다. 한 사람이 몇 개의 자격증을 갖는 '다(多)자격증'시대가 눈앞에 왔다.

◆ 규제 완화로 자격증 붐=시사지 아에라 최신호(14일자)에 따르면 내년에는 공인회계사 3차 시험이 폐지되고 각종 국가 자격시험 제도가 간소화된다. 자격 컨설턴트인 다카시마 데쓰지(高島徹治)는 "정부가 10년 전 세운 규제 완화 계획에 힘입어 특정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추면 무조건 자격을 인정하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불법주차 감시업무가 경찰에서 민간기관으로 위탁됨에 따라 생기는 주차감시원 자격증이 그런 사례다.

◆ 사회구조 변화=오사카 고령자자립지원센터는 지난해 12월 '노인 간호용 요리 자격증'제도를 도입했다. 노인 간병인이나 가족에게 큰 인기다. 현직에서 은퇴한 노년층은 고서적 읽기 인증이나 지역문화를 소개하는 전통문화 가이드 자격증 등을 따고 있다. 고령사회 때문에 발생하는 변화다. 해외유학생이 늘어나자 유학 알선업체의 전문성.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유학 어드바이저 제도'가 신설됐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의 코로 대기오염을 측정하는 후각 판정사▶야외생활을 지도하고 환경교육을 하는 산림 인스트럭터를 지망하는 사람도 늘었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잦아져 방재사 자격증도 인기다.

◆ 경기 흐름.유행을 타라=아에라는 "자격증의 인기는 경기 흐름과 유행에 크게 좌우된다"며 "1990년 초엔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이 큰 인기였으나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인기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24년 전 생겼던 애완동물 사육관리사는 경기 호황과 애완동물 붐에 힘입어 빛을 보고 있다. 애완동물 시장은 연간 1조 엔(약 10조원)으로 불어나 이 자격증은 부업을 하는 데 유리하다. 건강 중시 바람을 타고 생활병 예방사, 코칭(전화 상담), 컬러 세러피스트(색깔로 고민.스트레스 진단) 자격증 등도 뜨고 있다.

◆ 가정주부의 부업 욕구도 작용=자격.인증 제도는 직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사체를 소독하거나 부패방지 기술을 인증하는 제도가 이에 해당된다. 의료 관련 사무가 복잡해지면서 '진료 보수청구 사무능력 인정시험' '의료 사무기능 시험' 등을 치러 자격증을 딴 다음 부업 전선에 나서려는 가정주부도 많다. 일본 잡곡협회는 다음달 잡곡 조리기술을 인증하는 '잡곡 소믈리에 자격증' 시험을 처음 실시한다. 여기에는 건강식품으로 평가받는 잡곡의 요리법을 보급해 결과적으로 잡곡의 소비를 늘리려는 상술이 깔려 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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