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국제그룹(하)|전문 경영인(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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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어느기업룹의 세수이건 대개 노년이 되고 2세들이 장성하면 공사석에서 자신이 일으켜 가꾸어온 기업군의 「승계」에 대해 1세창업주로서의 생각과 방침을 밝혀두는것이 우리 재계의 일반적인 관례처럼돼 있다.
또한 이같은 승계에 대비, 미리부터 자신의 소유 주식을 2세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주는것도 창업세대가 주류인 우리재계에는 매우 낯익은 일이다.
이런뜻에서 국제그룹의 창업주 양정모회장은 2세에 대한주식양도와 경영참여문제에 관한한 누구보다도 엄격한 그룹총수다.
올해 63세인 양회장은 지난80년9월 그룹임직원들에게 평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자리에서 다음과같이 말한일이있다.
『아들들이 아직 대학을 다니는 관계도 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켜봐서 능력이 인정되어야 주식을 넘겨주지 그렇지못할 경우에는 아예 사회에 환원시켜버릴계획이다.』
양회장은 실제로 80년9월 당시까지 『나는 아직 아들들에게 주식을 단 한주도 주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3년이 지났고 양회장의 3아들 중 장남(26세)과 차남(24세)은 국내대학을 마치고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며 막내아들은 군복무중이지만 양회장이 아들들에게 물려준 주식은 아직껏 「단 한주」없는 것이나 다를바없다.
즉 가장 최근까지 양회장이 그의 2세들 앞으로 넘겨준 국제그룹 계열기업의 주식은 모두 합해봐야 5천만원 상당이채 안된다. 또한 아직까지 양회장은 한번도 그의 측근에게 상속을 위한 주식안배를 지시한 일이없다.
완고하다할 정도로 엄격한 국제그룹의 이같은「승계」 과정은 현 국제그룹 경영진의 주된 「인맥」과 언뜻보아 매우 상반되는듯 하지만 사실은 결코 무관하지않다.
즉 자신의 2세들에 대한 주식상속 경영참여에는 더할 수 없이 엄격한반면 적어도 겉으로보기에 양회장은 2세와 다름없는 사위들의 경영참여에는 매우 너그러운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사위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양회장은 사위들의 경영 참여에 대해서도 그리 「너그러운」 장인은 아님을 알수있다. 『일을 하다보면 사장단 회의석상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낼때가 있읍니다. 그럴때면 대부분의 경우 저희 사위들 주장은 채택안될때가 많습니다. 이런 일뿐만이아니라 실제로 사위라고해서 덕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볼때가 더 많다고 저희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양회장은 1달 1번꼴인 가족모임에서도 늘 『너희들 그따위로 하다가는 어디가서 깡통이나 차기 꼭 알맞다. 사람이 안되면 나중에 내 주식은 모두 사회에 둘려주고 만다』는 「질책」을 조금도 늦추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말해 국제그룹의 「사위경영인」들은 조금도 「너그럽게」중용된 사람들이 아니며 다그만큼한 실력들을 갖추고 나서 엄격하게 선발된 「준전문경영인」들이라는 것이다.
현재 양회장의 6사위 중 계열기업의 경영에 참여하고있는5사위의 경력은 매우 다채롭다.
또한 대부분 국제그룹톱밖의 다른 회사에서 「남의 밥」을 먹으며 경영수련을 쌓아오다가 어느정도 장인의 눈에 차면 비로소 국제그룹으로 「스카웃」되어오는 형식을 밟았다. 맏사위 한윤구 국제상사사장은 장인의 대통을 이은, 국내에선 내로라하는 「신발전문가」라 할수 있다. 지난68년변 평사원으로 국제화학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5년간 신발생산과 판매분야에서만 한우물을 파왔다.
둘째사위 이대황국제상선사장은 최근 국내 해운사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을 정도로 해운 선박에 관한 지식이 깊다. 이사장은 애초 국제계열이 아닌 대한선박에서 경영수련을 쌓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인 휘하의 사장직을 맡게된 케이스다. 이밖에 세째사위 김정형 국제제지사장도 처음에는 국제의 울타리 밖인 범양전용선에서부터 무역실무를 익혔으며 네째사위 김주영 조광하역부사장도 역시 처음에는 국제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섯째 사위인 김덕영현그롭룹회장은 국제종건의 중동본부장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을 해낸 경영수완이 장인의 눈에 들어 비로소 파격적으로 그룹부회장에 발탁될수있었다.
그러나 꼭 창업주의 가계라서만이 아니라 능력을 인정받고 나서야 경영을 맡긴다는 양 회장의 이같은 엄격한 인선원칙은 국제그룹의 승계와 관련, 또다른 맥을 갖고있다.
즉 양회장이 스스로 밝힌대로 아직 그의 2세들이 학업을 마치지 않았고 또 경영능력을 평가받기에는 때가 이르므로 이로인한 승계의 공백을 역시 자신의 핏줄과 가까운 경영인맥으로 채우고 있다고 할수있다.
능력을 인정할수있는바에야 이왕이면 「내 사람」을 쓰고 또 자신이 일으킨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비단 국제그룹만이 아니라 우리 재계의 어쩔수없는 상정이다.
결국 언젠가는 경영에 참여할 양회장의 2세들이 어느정도의 경영솜씨를 보일지 모르는 일이지만 「제2세대 국제」의 경영인맥과 승계에는 아직도 여러가지 변수가 많다고 할수있다. 양회장의 「엄격함」은 아직도 국제그룹의 승계와 경영인맥이 그 본류를 찾아가는 수련과정에 있음을 말해준다.
아마도 국제의 승계가 본류를 찾고 올해로 5기째를 맞는국제그룹의 공채출신들이 사장으로서 한몫을 할때가 되면 국제그룹의 경영인맥도 확고한 흐름을 잡을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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